우연한 여행자 - 무라카미 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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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어느 순간 우연히 찾아오는 기이한 인연, 그리고 이로 인해 시작되는 일련의 사건들. 우리는 그것을 우연, 혹은 기적이라 말한다.

아니다. 그것은 간절한 마음이다. 설령 오래 묵어 존재조차 잊었을지라도 여전히 숨죽인채 맥박치는 욕망의 발현이다. 또한 그것은 가끔씩 불어오는 바람이다. 그리고 문득 손가락 사이를 스치는 바람을 깨닫는 건 바로 나 자신이며, 바람을 가리켜 작은 날개짓이라 생각하는 자도 바로 나 자신이다. 물론 바람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바람을 움켜쥔 채, 알 수 없는 미래를 향하여 한 발을 내딛는 것은 우연이 아닌 인간의 몫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러한 시도가 잘 될 턱이 없다.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조차 모른채 갈팡질팡 할 뿐이다. 그러는 사이 바람은 언제 왔는지조차 모르게 지나가 버린다. 설사 용기내어 시작한 작은 시도조차 약간의 어려움에 짓밟히거나, 혹은 부지불식간에 미련과 집착이 낳은 괴물로 화한다. 여러 차례의 실수와 실패는 상처로 남아, 응어리진 채 풀 길이 없다.

다행히 하루키는 작은 위안을 준다. 본시 이 소설의 불행은 사소한 오해와 어찌할 수 없던 운명이 낳은 갈라섬이었다. 그리고 우연한 계기와 뜻밖의 용기에 이끌려, 헤어진 사랑은 다시 만난다. 마치 원래 당연히 그래야 할 것처럼.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작은 일인 것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알고 있다. 소설은 소설일 뿐,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잔혹한 현실에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행복한 결말이라고. 하지만 그들의 잔잔한 기쁨을 바라보며, 우리 역시 우리의 상처를 보듬을 수 있는 그런 우연한 일이 언젠가 일어나리라 자신도 모르게 소원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작은 바람을 붙잡을 용기가 있는지, 있다고 해도, 제 아무리 최선의 미덕을 다한다 해도 맥베스적 결말을 맞이할 뿐은 아닌지는 여전히 모를 일이다.

우연한 여행자, 도쿄 기담집, 무라카미 하루키, 임홍빈 역, 2006, 문학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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