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겪은 한국전쟁 이야기(징병편)
할아버지께 들은 한국전쟁 이야기. 아마도 여러 에피소드를 소개할 수 있을 듯 하다. 가급적 연재할 예정.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즉시 징병이 시작되었다. 우리 마을은 면사무소가 있는 동네였다. 당연히 신속한 행정력의 발동을 피할 수 없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할아버지 나이 또래의 분들은 당장 징병되어 뿔뿔이 흩어졌다. 하지만 그 중 한 분만은 떠나신지 얼마 되지않아 마을로 돌아왔다. 그 사연인즉 이렇다.
어느 트럭의 짐칸에 올라타 어디로 향하는지도 모른채 가고 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아무리봐도 이젠 죽은 목숨이었다. 흙먼지 매케하게 맡으며 한탄하고 있었는데, 문득 트럭 짐칸에 함께 실린 짐더미가 뭔지 궁금해졌다. 살펴보니 쌀가마니였다. 어짜피 죽을거 먹고나 죽자는 생각에 생쌀을 배 터질 때까지 입속에 밀어넣으신 그 분은, 정말로 배탈이나 그 길로 의가사 제대를 당하고 말았다. 돌아온 그 분을 보고 다들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징병되어간 사람들은 그 이후 단 한 사람도 돌아오지 못했다. 그렇게 거진 한 세대가 사라졌다. 누군가는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내가 이렇게 그때의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었던걸로 미루어보아, 마을의 유일한 생존자가 바로 너희 할아버지 아니냐고. 타당한 추론이지만 약간의 반전이 있다. 우리 할아버지는 증조할아버지께서 출생신고를 7년이나 늦게 하신 덕에, 전쟁 극초반의 징병을 피할 수 있었다. 아마 누구도 이렇게 될 줄 몰랐겠지. 운과 뜻밖의 일들이 전부인 시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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