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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평

전반적으로 이명박이 외치니 전세계가 고개 숙였다는 기조의 책이다. 버냉키와 가이트너의 회고록과 비교하여 내용에 깊이가 없고, 단편적-단선적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권의 실책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는다. 대통령 재임 시절 그렇게 부지런하게 일했다고 자신하던 그였으나, 회고록에는 성의를 기울이지 않은 듯 하다.

대침체와 유로존 위기

대침체와 유로존 위기에서 한국은 선방했다. 이 점은 사실이다. 아마도 이명박 정권 최고의 치적일 것이다. 비록 한국은 대침체-유로존 위기의 당사자가 아니기는 했으나, 수출 대국 한국으로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었다. 결국은 위기 당사국의 강력한 대응으로 위기는 진정되었으나, 한국 행정부의 최고 사령관으로서 그 대응 과정을 상세히 다루지 않아 아쉽다. 금융-재정-통화 공조에 이르는 고뇌는 국가 기밀 사항도 아니었을테니 상세히 써도 좋았을 것이다. 통화 스왑을 마치 한국 정부가 주도한 것마냥 약간의 비중을 두어 서술했으나, 한국은 그저 미국이 떠먹여 준 것을 받아 먹었을 뿐, 한국이 주도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물론 떠먹여 줄 때 잘 받아먹는 것도 능력이기는 하다. 위기시 재정 정책을 4대강 살리기 토목 예산으로 떼웠다는 세부 내용도 아쉽다. 자칭 경제 대통령으로서 금융 위기 대응을 이토록 부실하게 회고한 점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나 다름 없다.

인간 이명박

국격, 명분론, 원칙론에 대한 집착은 놀랍다. 책의 2/3은 외교 사령탑으로서의 결정을 다루고 있다. 이 부분에서 비치는 이명박 대통령의 모습은 이렇다.

  • 미국, 일본, 중국 정상과의 회담에서 명분론을 주장
  • 대북 관계에서 원칙론을 강경 고수
  • FTA처럼 극히 실리적인 협상을 다루면서도 국격을 걱정

이 책의 주장으로 미루어보아 각국 정상들은 이명박의 커리어에 대해 상당히 잘 알고 있었던 듯 하다. 그런 사람이 조선 사대부나 할 법한 명분론을 내세웠다. 심지어 굳이 상대방이 청하지도 않은 조언도 명분론에 입각해서 한 듯 하다. 이를 들은 각국 정상들은 속으로 어떤 생각을 했을까? 아니, 정말로 이명박 대통령은 명분론을 내세우긴 한걸까? 회고록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다.

세상 누구보다도 실리적일거라 기대받았고, 그랬기에 대통령까지 할 수 있었던 이명박이다. 그는 상당히 복잡한 사람이다.

세계 질서

그래도 돌이켜보면 이명박 정권의 시대는 세계 질서의 좋은 시대였다. 미국은 대침체의 당사자였지만 가장 빠르게 회복하고 있었다. 중국의 후진타오는 도광양회 중이었다. 미국의 군사력이 중국을 향하기 시작했으나 갈등에 이르지는 않았다. 메드베데프의 러시아는 푸틴의 꼭두각시일지언정 평화로웠다. 일본에서는 최초의 정권 교체가 있었다. 불과 15년만에 세계는 미중 갈등과 관세 전쟁으로 블록 경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한미 FTA 협상에서 이명박이 오바마에게 내세운 실리가 바로 ‘더 많은 교류가 더 안정적인 세계를 만든다’는 것이었음을 돌이켜 볼 때, 세계가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우려스럽다.

숨겨진 치부

이명박 정권은 내 인생에서 한국 정치에 가장 많은 관심을 기울이던 시절이었다. 당시 나는 친구 송지완에게 이렇게 이야기 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MB정권을 드라마로 만들면 얼마나 재밌을까? 지금도 이렇게 웃긴데 말이야.’ 정권의 각종 실책과 황당한 대응, 그리고 실언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의 회고록에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는 없다.

202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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