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문자 사회의 역사
서아프리카 무문자 사회에 대한 문화인류학의 성과를 엿보며 한반도의 고대사를 생각한다. 무문자 사회에서 신화는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누에르족의 신화에서 최초의 인간이 출현했다고 여겨지는 나무는 1920년대까지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전승된 계보라 할지라도 진실을 전하기 보다는 현재의 상황을 정당화 하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 잠정적 종합이자 일방적인 홍보물이다. 끼워 맞춰지고, 뒤틀리고, 반복되며, 심지어 다른 종족의 계보마저 편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삼국사기의 초기 기록의 신뢰성에 대한 논쟁은 우습다. 왜 동명왕과 주몽 설화는 같은 이야기인가? 십제와 백제, 온조와 비류 신화가 전하는 진실은? 신라의 왕통이 박-석-김을 오간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한국 고대사는 이대로라면 문화인류학이 이미 1970년대에 이룩한 성과에 근접할 수조차 없다. 자칭 ‘역사’라 함은 ‘입신출세한 유력자의 자서전’은 아닐까, 재발견 해야 할 대제국 따위야 없어도 좋지 않은가. 역사 본연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없다면 그것은 모양을 달리한 서구 중심주의와 다를 바 없다.
2024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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