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식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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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스타워즈에서는 중요한 순간마다 주인공에게 이미 고인이 된 스승의 목소리가 들린다. “루크, 포스를 믿어라.” 그러면 주인공은 미혹을 버리고 목소리의 가르침을 따른다. 그리고 우주를 구한다. 한낱 영화 속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낯설게 본다면 마냥 그렇지도 않다. 주인공이 들은 목소리는 환청이며, 죽은 스승이 제다이의 영이 되어 나타나는 것은 환각이다. 광선검을 휘두르는 구도자라는 멋드러진 설정에 가려져 있다고 해도 이는 변하지 않는다. 환청이 들리고 환각이 보이며, 환청과 환각의 지시를 거부할 수 없다면 이는 현대의 주류적 기준으로 보아 정신병의 영역이다.

그렇지 않다면 종교의 영역이다. 환청과 환각(환시)는 종교계에서는 흔히 기적이라 한다. 이 현상이 정말로 기적인지 아닌지는 나로서는 논할 수 없다. 아무튼 종교적 체험은 불특정 다수에게 공개적으로 말하기 힘든, 극히 내밀한 개인적 경험이다. 이렇게 취급되는 이유는 그것이 문화적 주류에게 용납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환청을 경험한다. 많은 어린이들이 상상 속의 친구와 대화한다. 공교롭게도 멀리 영국에서는 스타워즈에서 소개된 신비로운 힘인 ‘포스’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다이교가 존재한다.

이 모든 것을 정신병적 현상이라 취급하는 것은 현대 과학의 어리석음이자 오만이다. 주류가 아니라 배척받는, 모든 생물 종에서 끊임없이 변주되는 익숙한 패턴이다. 하지만 주류는 언제부터 주류였는가. 의식이 문화적 발명품이라는 이 책의 주장대로라면, 적어도 문화적 주류라는 문제에 있어서는 그 교체 주기가 그리 무겁지는 않아보인다. 세상이 점점 더 복잡해질 수록, 이에 대한 반발로 확실성에 대한 열망이 강해질 수록 그렇다. 현대인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는 과학이라는 일종의 종교 역시도 이러한 열망의 산물이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는 현상이다. 현상에서 눈 돌리는 건 도피일 뿐이다. 현상을 받아들일 뿐 아니라 이를 꿰뚫는 통찰을 낳는 시작은 ‘낯설게 보기’다. 진정으로 확실성에 대한 강력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 책은 ‘낯설게 보기’에 대한 좋은 예시가 되어주리라 믿는다. 그 주장이 옳든 그르든 간에 말이다.

20240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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