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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뫼, 시간의 파림프세스트(Palimpsest): 함평 제동 고분의 다층적 경관과 기억의 재구성

초록 (Abstract)

본고는 전라남도 함평군 엄다면에 위치한 제동 고분(일명 ‘별뫼’, ‘천문단’)이 단일한 고대 유적을 넘어, 삼한시대부터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의미가 겹쳐 쓰인 ‘다층 문화 경관(Layered Cultural Landscape)’임을 규명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고고학, 역사학, 민속학, 그리고 기억 연구(Memory Studies)를 아우르는 학제적 접근을 통해, 고분의 물리적 형태와 ‘별(星)’이라는 상징이 어떻게 각 시대의 필요에 따라 재해석되고 전승되었는지를 분석한다. 이를 통해 제동 고분이 단순한 유적을 넘어, 단절된 역사를 잇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기억의 장소(Lieu de mémoire)’로서 기능해왔음을 논증하고자 한다.


I. 서론: 별뫼에 서서, 시간을 묻다

해 질 녘, 함평 엄다 평야의 낮은 구릉, 별뫼(星山)에 오르면 시간의 흐름은 다른 밀도로 흐르는 듯하다. 발밑에는 1,700년 전 마한인의 숨결이 깃든 고분이 잠들어 있고, 눈앞에는 함평천을 따라 펼쳐진 황금빛 들녘과 낙조가 장관을 이룬다. 이 고요하고 장엄한 풍경 앞에서 인간은 자연스레 경외(Awe)의 감정에 휩싸이며, ‘나는 누구이며, 이 땅은 무엇을 기억하는가’라는 근원적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이 개인적 체험은 하나의 학문적 질문으로 이어진다. 어떻게 하나의 장소는 이토록 여러 시대의 이야기를 품고, 기억의 층위를 겹겹이 쌓아 올릴 수 있었는가?

본고의 목적은 함평 제동 고분이 단순한 고고학적 유구를 넘어, 삼한시대의 무덤, 조선시대의 천문대, 그리고 근현대의 민속 성역으로 기능하며 형성된 다층적 문화 경관임을 분석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발굴 보고서와 같은 고고학 자료, 고문헌 및 지도와 같은 역사학 자료, 그리고 구술 채록과 같은 민속학 자료를 종합적으로 활용하는 학제적 접근을 시도한다. 또한 모리스 알박스의 ‘집합 기억’과 피에르 노라의 ‘기억의 장소’ 개념을 이론적 틀로 삼아, 제동 고분이 어떻게 단절된 역사를 잇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상징적 앵커(anchor)로 기능했는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II. 제1층위: 고대의 권력과 천문 - 마한 지배자의 무덤

제동 고분의 가장 깊은 층위는 서기 3~4세기, 마한의 역사로 거슬러 올라간다. 2024년 발굴조사를 통해 하나의 봉분 아래에서 두 기의 합구식(合口式) 옹관이 ‘ㄱ’자 형태로 배치된 구조가 확인되었다. 이는 영산강 유역 마한 사회 최상위 지배층의 전형적인 장례 방식이다. 특히 1호 옹관 바닥에서 출토된 청동거울은 이 무덤의 성격을 규정하는 핵심 유물이다. 고대 사회에서 거울은 태양과 하늘을 상징하는 제의적 도구이자, 소유자의 신성한 권위를 드러내는 위신재(威信財)였다.

고분의 입지 또한 의도된 설계의 결과물이다. 구릉 정상에서는 북동쪽으로 함평천과 드넓은 평야가 한눈에 들어오지만, 남서쪽으로는 더 높은 산줄기가 시야를 막아선다. 이는 외부 세력을 향한 방어적 조망이 아닌, 자신들의 지배 영역인 농경지와 생활 터전을 굽어보며 통치권을 과시하려는 ‘시각적 선언’에 가깝다. 나아가 묘축(墓軸)이 동쪽 또는 동남쪽을 향했을 가능성은, 무덤의 주인이 일출과 별의 운행을 중시하며 농경에 필수적인 역법(曆法)과 제의를 주관했던 ‘제사장적 군주’였을 수 있음을 암시한다. 이처럼 제동 고분의 첫 번째 층위는 ‘하늘의 권위를 땅에서 실현한’ 마한 소국 지배자의 무덤으로 새겨졌다.

III. 제2층위: 유교적 질서의 재편 - 조선 학자의 천문단(天文壇)

마한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고분에 대한 직접적인 기억은 소멸했다. 봉분은 주인을 잃고 그저 ‘말무덤’이라는 민간 설화가 깃든 거대한 둔덕으로만 남았다. 이 망각의 층위 위에 새로운 의미를 덧씌운 인물은 16세기 조선의 사림 학자 곤재(困齋) 정개청(鄭介淸)이었다. 그는 귀향 후 이 봉분 정상에 흙을 다져 ‘천문단(天文壇)’을 쌓고 천체의 운행을 관측하며 학문을 강론했다.

그가 이곳을 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사방이 트인 지형은 천문 관측에 이상적이었고, 이미 존재하는 봉긋한 봉토는 하늘과 소통하는 제단(壇)의 상징성을 부여하기에 충분했다. 정개청은 옛 무덤을 유교적 합리성과 과학적 탐구의 공간으로 재브랜딩함으로써, 장소의 성격을 ‘죽음의 공간’에서 ‘지식의 공간’으로 전환시켰다. 이후 그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616년 봉토 아래에 자산서원(紫山書院)이 건립되면서, 고분-천문단은 서원의 주산(主山)으로 편입되어 유교적 질서 안에서 신성한 배경으로 자리 잡았다. 이 과정은 옛 무덤이 파괴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온전히 보존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IV. 제3층위: 민속적 기억의 잔향 - ‘별뫼(星山)’의 밤별굿

조선 유학자들이 부여한 ‘천문’의 이미지는 민중의 삶 속으로 스며들어 새로운 민속을 낳았다. 18세기 《해동지도》에서부터 ‘성산(星山)’이라는 지명이 등장하고, 19세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별뫼’라는 이름이 병기되어 오늘에 이른다. 이 지명은 단순한 행정 명칭을 넘어, 장소가 품은 기억의 핵심을 압축한다.

이 ‘별’의 기억은 20세기 초까지 ‘정월 밤별굿’이라는 구체적인 의례로 살아남았다. 지역 주민들은 정월 대보름 전날 밤, 이 봉분에 올라 북두칠성을 향해 풍농과 안녕을 기원하는 굿을 벌였다고 한다. “북두칠성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안 된다”는 금기는 이 장소의 신성성을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이 민속 의례는 마한의 제사장이나 조선의 학자가 가졌던 천문에 대한 엘리트적 관심이, 민중의 생존과 직결된 기복 신앙으로 재창조되었음을 보여준다. 고대의 제의는 이렇게 민속의 옷을 입고 끈질기게 생명력을 이어갔다.

V. 종합 논의: 기억의 파림프세스트, 제동 고분

제동 고분의 사례는 하나의 장소가 어떻게 여러 시대의 기억을 겹겹이 축적하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한 ‘파림프세스트(Palimpsest)’다. 낡은 양피지 위에 쓰인 글씨를 지우고 새로운 글을 덧입혀도 옛 흔적이 희미하게 남듯, 제동 고분이라는 물리적 공간 위에는 마한의 권력, 조선의 학문, 근대의 민속이 차례로 덧씌워졌지만, ‘하늘’과 ‘별’이라는 원형적 상징은 결코 지워지지 않았다.

이러한 현상은 피에르 노라가 말한 ‘기억의 장소(Lieu de mémoire)’의 전형이다. 살아있는 기억의 환경이 사라진 후, 제동 고분은 과거를 응축하고 상징하는 구심점이 되었다. 또한 로마의 판테온이 고대 신전에서 기독교 성당으로, 아일랜드의 뉴그레인지가 선사시대 무덤에서 켈트 신화의 성소로 재활용되었듯, 제동 고분은 인류 보편적인 ‘지속 장소(Persistent Places)’의 한국적 사례라 할 수 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조망이 좋은 높은 곳에 이끌리며(전망 지향성), 자신보다 거대하고 오래된 존재 앞에서 경외(Awe)를 느끼고 삶의 의미를 찾으려 한다. 제동 고분은 바로 그 본능적 끌림과 의미 찾기의 욕구가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반복적으로 투영된 공간인 것이다.

VI. 결론: 잊히지 않는 언덕, 별뫼

함평 제동 고분은 더 이상 단일한 시대의 유적이 아니다. 그곳은 마한 지배자의 권위, 조선 학자의 이성, 그리고 민중의 염원이 층층이 쌓여 만들어진 살아있는 역사 지층이다. 본고는 고고학, 역사, 민속의 경계를 넘어 이 다층적 경관의 형성 과정을 추적함으로써, 하나의 장소가 어떻게 기억을 매개하고 공동체의 정체성을 형성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했다.

제동 고분의 사례는 우리에게 문화유산의 보존이 단순히 물리적 형태를 지키는 것을 넘어, 그 안에 깃든 다층적인 이야기를 함께 보존하고 해석하는 작업이어야 함을 시사한다. 이 작은 언덕, ‘별뫼’는 과거와 현재가 대화하고, 개인의 실존적 물음과 공동체의 집합 기억이 만나는 소중한 공간이다. 앞으로 토양의 미세 유물 분석이나 미발굴 구술 자료의 확보를 통해 이 기억의 층위를 더욱 정밀하게 복원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그 언덕은 오늘도 해 질 녘 그곳을 찾는 이들에게 말없이, 그러나 가장 깊은 목소리로 시간을 이야기하고 있다.

ChatGPT와 Gemini의 도움을 받아 작성했습니다.

EOD

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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