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망의 개혁과 평가
왕망에게서 도널도 트럼프를 비춰본다.
패배자로서 왕망은 지난 2천 년 동안 끝없는 조롱과 저주를 받았다. 하지만 후대의 역사가 승리자의 프로파간다임을 염두에 둔다면, 왕망을 그저 황당한 복고주의자라고만 취급할 수는 없다. 왕망 자신부터 비록 널리 알려진 단점, 즉 잔인하고 미신을 좋아하며 위선적인 면이 있으나, 그의 찬탈은 외척 간 권력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불가피 했던 결과이며, 탁월한 두뇌의 소유자이자 근면 성실하게 당대 지식인의 이상을 실천하던 사람이다.
왕망의 개혁 또한 비록 실패했으나, 개혁의 시의성은 분명히 존재했다. 소농민이 몰락하고 대지주 호족이 강성해져 국가의 근간이 흔들린 이상, 위정자로서 어떻게든 해법을 찾아야 했다. 화폐 개혁, 정전제, 오균제 등은 모두 당대 지식인의 여망이거나, 과거 한무제의 정책을 발전시킨 것들이었다. 의도는 훌륭했고, 제도 자체도 적어도 당대 지식인의 관점에서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그 실행에 있어서 왕망은 전형적인 헛똑똑이었다. 관료 조직은 이미 말단까지 부패해 있어서 손 쓸 방법이 없었다. 구 한왕조에 충성하던 지식인이 여전히 많기 때문에 그가 쓸 수 있는 인재풀은 친인척으로 한정되었다. 개혁을 통한 기득권층의 해체는 유사 이래 성공한 경우가 드문데도 과감하게 밀어 붙였고, 곧 강력한 반발에 부딪혀 원복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흉년까지 빈발했으니, 흉노 전쟁에서의 패배를 감당할 수 없었다. 그 결과는 내전과 왕망 본인의 파멸이었다.
트럼프는 어떤가. 전세계적인 기득권 딥스테이트와 싸우고 있다고 자칭하는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고 한다. 기득권층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의 기득권층은 자본가들이다. 금권으로 세계를 좌우하는 그들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합법적 방법은 선출된 정치인 뿐이다. 민주주의의 정점인 미국 대통령으로서 그가 개혁에 실패한다면, 이는 곧 민주주의의 몰락과 좌절을 의미한다. 현재로서는 그의 개혁이 무엇일지, 심지어 대적자인 기득권층이 무엇인지도 가늠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의 성패를 예측하기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인류 역사가 관성대로 흘러간다면, 그의 실패도 어느정도 예견할 수 있으리라 본다.
임중혁, 동양사학회, 東洋史學硏究 第51輯, 1995.07
20250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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