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 소녀 고르고
즉각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이야기가 되기 위한 조건은 많지 않다. 강자를 물리치는 약자, 거대한 전쟁, 압도적인 무공, 용기와 희생의 비장미, 일발역전의 계책이다. 무협지의 전형적인 레퍼토리를 말하는건가? 아니다. 고대 그리스-페르시아 전쟁을 다룬 헤로도토스의 ‘역사’가 그렇다. 터무니 없어 보이지만 실화다.
이 책은 바로 그 사건을 다루고 있다. 당연히 재미있을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저자 톰 홀랜드는 지난 25년간 역사적 사건을 소설보다 재밌게 풀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림 역시 대단히 아름답다. 성공은 보장된 것만 같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책은 기대에 부응하지 못 했다. 재미가 없다는 뜻이 아니다. 기대가 지나쳤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나는 새삼 페르시아 전쟁 이야기의 원저자인 헤로도토스를 재평가 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언뜻 헤로도토스는 두서 없어 보이는 이야기를 산발적으로 늘어놓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역사학이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시행착오로 여겨졌다. 하지만 헤로도토스의 서술에는 장대함이 있다. 페르시아 제국의 거대함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제국의 지배를 받는 세계 곳곳의 수많은 민족들 각각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 비롯한 공간감 때문이다.
어쩌면 헤로도토스 특유의 방만한 서술은 위와 같은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닐까?
2024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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