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질서 - 헨리 키신저
헨리 키신저의 『세계 질서』를 덮고 나면, 머릿속에는 두 줄의 강철 레일이 남는다. 하나는 베스트팔렌 체제가 닦아 놓은 세력균형의 레일, 다른 하나는 윌슨이 깔아 올린 이상주의의 레일이다. 국제정치는 이 두 선로 위를 동시에 달리는 기차처럼 흔들리고, 때로는 갈라지며, 결국에는 충돌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분기점을 만들어낸다. 키신저는 그 분기점들의 지도를 그리는 데 탁월하다. 그는 주권과 내정 불간섭, 국경의 선명함을 믿는 베스트팔렌의 눈으로 세계를 재단하면서도, 자유와 인권, 국제기구라는 규범의 언어가 어떻게 현실을 흔드는지 끝내 외면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의 시선은 언제나 힘의 중력에 더 끌려 있다.
책의 출발점은 명료하다. 유럽이 발명한 질서—각국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평화를 겨우 봉합하던 메커니즘—가 두 차례 세계 대전으로 스스로 무너진 뒤, 미국이라는 초강대국의 어깨 위에 다시 세워졌다는 진단. 윌슨은 그 잔해 위에 국제연맹과 보편 가치를 얹어 새로운 천장을 만들려 했고, 이어서 UN이 그 천장을 보수했다. 그러나 UN은 합의의 노고를 견디기에는 팔힘이 약하고, 전쟁을 막기에는 손이 너무 느리다. 결국 세계는 미국이라는 거대한 기둥과, 세력균형이라는 철근, 그리고 인권이라는 유리창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 키신저의 문장은 말한다. 미국은 모순된 두 임무—힘으로 평화를 유지하고, 가치로 인간을 구원하라—를 동시에 수행해야 했던 ‘정의로운 제국’이다.
그의 현장 묘사는 지역별로 인간의 성격을 초상화 그리듯 빚는다. 유럽은 베스트팔렌의 산실이자 세력균형의 장인(匠人)이었지만 스스로 만든 불꽃에 데여 유럽연합이라는 규범의 공동체로 피신했다. 러시아는 지도의 폭을 혼자 견디는 대륙의 피로 속에서, 단 한 번의 패배가 해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 그래서 주변의 독립을 위험으로, 중립을 함정으로 본다. 우크라이나의 비극은 이 감응성 위에서 점화된 불씨인지도 모른다. 동아시아는 지금으로서는 현상 유지의 정교한 시계를 돌린다. 북한조차 동북아 세력 균형이라는 시계의 정밀 부품일 뿐이다. 다만 각국의 심장 속에는 옛 전성기의 지도가 지도가 접혀 들어 있다. 중국은 전 세계에 자신의 생득권을 주장하기 위한 준비를 거의 마쳤다. 인도는 군사적 제국의 전통은 희미하지만 문명적 잠재력으로 자신의 자율성을 키워가는 느린 대륙이다. 중동에서는 베스트팔렌의 언어가 종교와 혁명의 언어 앞에서 더듬거린다. 이란은 특히 이렇게 말한다—국경과 주권은 진리 앞에서 잠정적일 뿐이라고.
이 모든 이야기의 배경에는 키신저가 신봉하는 하나의 문장이 흐른다. “개인이 성격에 운명을 지듯, 국가도 역사가 성격을 빚고 운명을 결정한다.” 그의 현실주의는 이 문장을 흔들림 없이 받친다. 국가의 기억, 체제의 반사신경, 지도자의 기질이 합쳐져 정책을 만든다면, 외교는 결국 힘의 분포를 측량하고 충돌을 지연시키는 기술이 된다. 그 기술의 장인은, 물론 미국이어야 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과 사망이 줄고 번영이 확장되었다는 사실은 곧 미국의 자신감을 뒷받침 한다.
그러나 이 단단한 프레임은 때로 지나치게 매끈하다. 규범과 여론, 인권 담론은 더 이상 장식용 프레임이 아니다. 관세와 제제는 실물경제의 혈류를 바꾸고, 글로벌 공급망에는 가치의 프리미엄이 붙는다. 국경을 가로지르는 힘도 새로 솟았다. 빅테크, 반도체, AI는 주권의 경계를 흐리고, 비국가 행위자에게도 정책을 흔들 힘을 준다. 무엇보다 키신저의 조감도가 놓치는 것은 중견국의 행위성이다. 한국과 폴란드, 베트남, UAE 같은 나라들이 경제·군사·외교의 수단을 미세 조정하면서 틈을 벌리고, 균형의 레버를 자신 쪽으로 조금씩 당기는 장면은, 강대국 중심 렌즈로는 해상도가 낮다. 여기에 기후위기·팬데믹·초연결 금융 같은 비군사적 전지구 리스크가 겹치면, 세력균형의 어휘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 영역이 더 넓어진다. 힘의 기계장치로는, 세상의 모든 소음을 담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책은 유용하다. 세상을 읽는 간결한 문법—힘과 가치의 이중나선—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뉴스를 펼쳐두고, 먼저 힘의 배치를 그린 다음, 가치와 규범의 제약을 표시하고, 마지막으로 국내정치·산업·기술 변수를 덧칠하는 세 단계 독해법을 적용해보라. 『세계 질서』는 더 이상 옛 권력의 회고가 아니라, 현재를 해부하는 작업대가 된다. 미국을 ‘정의로운 제국’이라 부르는 언어가 어디까지 분석이고 어디서부터 정치적 수사인지, 동아시아의 현상 유지가 어떤 조합의 사건—공급망 디커플링, 기술 제재, 국내 권력교체(?)—에 의해 깨질 수 있는지, 우크라이나 전쟁을 필연으로 볼 것인지 선택의 결과로 볼 것인지, 질문이 자연히 뒤따른다.
키신저의 세계 지도는 정확하고, 그 정확함이 때로는 잔인하다. 그러나 지도는 지형이 아니다. 지형에는 창문을 두드리는 시민의 목소리와, 데이터센터의 열기, 위성의 궤도, 덥고 긴 여름의 전력난이 함께 새겨진다. 우리는 그의 지도를 접고 버릴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위에 오늘의 등고선을, 규범의 등치선을, 기술의 등류선을 새겨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질문이 또렷해진다. 미국은 어떤 속도로 두 레일을 달려야 하는가? 중견국은 어디에 분기기를 설치할 것인가? 새로운 질서의 언어는 힘과 가치 외에 무엇을 더 말해야 하는가? 『세계 질서』는 출발점이다. 세계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이 논문은 ChatGPT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EOD
2025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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