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기 시대의 무역과 경제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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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기 시대의 무역과 경제 성장

최근 자유 무역의 효과에 대한 많은 논쟁이 일어나고 있다. 무역을 제한하는 정책은 세를 얻고 있다. 물론 경제학자들은 아담 스미스와 데이비드 리카르도 이래로 자유무역은 이득이라 주장해왔다. 하지만 실증적인 증거가 문제다. 실증적 증거는 구하기 어려울 뿐더러, 대부분 최근의 현상들 뿐이다. 실증 경제학자들은 개방된 경제, 통합된 시장과 빠른 경제 성장 간의 관계를 증명하고자 노력해왔다. 하지만 더 어려운 문제가 있다. 무역이 성장을 이끌까, 아니면 번영한 경제일수록 더 개방적인걸까?

최근의 많은 연구 덕에 이 인과관계를 어느 정도 풀 수 있었다. 신기술 도입이나 새로운 무역 루트 같은 역사적인 사건들을 살펴본 덕분이다. 2차 대전 이후 동독과 서독 국경의 도시들의 성장세가 둔화된 연구. 1870 ~ 90년대에 미국 철도의 확장이 농업에 끼친 영향. 1950년대 후반 미국 고속도로의 확장이 소매 판매량을 10% 높였다는 연구. 항공운송도 마찬가지로 매출과 이익을 늘렸으며, 증기선이 새로운 무역 루트를 뚫었다. 모두 무역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왔다. 이런 경제적 이익이 비배타적인 정체체를 갖춘 나라에서만 관측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해도 이런 에피소드들은 죄다 최근의 사건들이다. 자연히 이거 다 산업혁명 때문 아닌가 하는 의문이 나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역사 깊이 파고 들어보자. 무역은 오랫동안 중요한 역할을 했따. 대서양 항로가 시작된 1500년 이후로 유럽의 경제 중심이 남유럽에서 대서양 연안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기원전에 첫번째 천년기에 있었던 인류 역사 최초의 무역 확장, 페니키아인이 지중해를 가로지르는 무역 체계를 구축한 사건이 불러일으킨 성장 효과를 분석했다.

페니키아인 시대의 상인과 쥐

지중해 최초의 항해는 기원전 1만년의 수렵채집민 사회에서 시작되었다. 이 시기에 사람들이 섬에 정착하기 시작했고, 흑요석과 화산암 등을 먼 상당히 먼 거리까지 운반했다. 기원전 3천년이 되자 항해술의 발전 덕에 배를 통한 운송이 육로 운송보다 훨씬 값싸게 먹혔다. 그리고 2천년 내내 지중해에서 지역적 무역 네트워크는 점점 더 중요해졌다. 하지만 대부분의 항해는 연안 항해였다. 원양 항해는 오로지 키프로스와 크레타, 알바니아에서 이탈리아 반도의 발뒷꿈치에 이르는 항로처럼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감행했다. 오로지 기원전 900년경에 페니키아인이 체계적이고 정기적으로 지중해를 횡단할 수 있었다. 드디어 밀도있는 무역망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고전 고대(역주: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 시대인 기원전 8세기에서 기원후 5~6세기)의 직전에 이르자 지중해는 페니키아인과 그리스인, 그리고 다른 선원들이 끊임없이 가로지르는 장이 되었다.

이러한 무역의 확장은 그때까지의 모든 무역을 범위와 규모에 있어서 크게 뛰어넘었다. House mouse는 이러한 확장의 지표다. 동남아시아에서 기원한 이 종은 기원전 1만2천년 경에 지중해의 동안에 이르렀다. 그리고 남아나톨리아에서 북동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1만년이 걸렸다. 기원전 1000년에도 이 쥐들은 그리스에 거의 없었다. 하지만 지중해에서의 본격적인 무역이 시작되자 이 쥐들은 지중해 중앙과 서쪽에 이르기까지 급속도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실증적 증거

이러한 무역의 증가가 정말로 경제를 성장시켰는지를 분석하기 위하여 우리는 이 점에 착안했다. 해안의 모든 지점이 원양 항해에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모든 해안은 접근성이 다르다. 해안의 모양새와 섬의 위치는 무역 상대가 될만한 다른 지역에 도달하기 위한 난이도를 결정한다. 지도 1은 이를 측정한 결과다. 예를들어 에게해와 이탈리아 남부, 시칠리아는 다른 지역보다 접근성이 훨씬 더 좋다.

우리는 접근성을 무역 기회의 척도로 잡았다.

Figure1. Log connectedness at 500km distance Log connectedness at 500km distance

인류 역사 초기의 경제 성장을 측정하기란 어렵다. 소득도, GDP도, 인구 측정치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고고학 유적의 정착지와 도시화를 가지고 경제 성장의 척도로 삼았다. 물론 이게 완벽한 방법은 아니다. 하지만 더 많은 유적은 더 많은 인간의 존재와 활동을 암시하낟. 따라서 우리는 특정 시기 고고학 유적지의 숫자를 위에서 측정한 접근성과 연결시켜보았다.

접근성과 고고학 유적지는 상당한 양의 상관관계를 보였다. 무역 접근성이 철기 시대 지중해 세계의 경제 성장에 미친 영향은 미국 철도가 미국 경제에 끼친 영향의 두배에 달했다. 물론 이 둘을 직접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이만큼의 강도는 역사 초기에 지리적으로도 무역의 발달에도 큰 역할을 했음을 암시한다.

다른 시간대에 우리의 분석을 적용해본바, 기원전 2번째 천년기 시점의 효과는 상대적으로 작았고, 기원전 750년부터 효과가 상당히 커졌다. 이는 철기 시대에 무역이 활발해졌다는 사실과 일치한다. 물론 이전 시대일수록 유적을 발견하기 어려움은 감안해야 한다.

접근성의 효과는 기원전 500년경에 정점에 달하고, 그 이후에는 점차 약해진다. 지중해 전역에 달했던 로마 제국의 최전성기에도 접근성 효과가 약해진다는 사실은 혼란스럽다. 이는 아마도 기원전 900년에서 기원전 500년 사이에 가장 접근성이 좋은 위치는 모두 선점당했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기원전 500년 이후에 세워진 도시는 이전에 세워진 도시보다 접근성이 떨어졌다. 이 시대에 세워진 도시들이 꾸준히 번영했음이 그 증거다(역주: 접근성이 떨어지는 도시라면 아마도 쇠퇴했을테니까).

지중해에서만의 현상이 아니다

우리가 가진 대부분의 데이터는 지중해 지역 뿐이지만, 기원후 1세기의 인구 밀도를 토대로 우리의 방법을 전세계 규모로 적용해보았다. 그림2에 나온 것처럼, 접근성과 인구 밀도는 강한 상관관계를 보였다.

Figure2 Relationship between population density in 1 AD and connectedness Relationship between population density in 1 AD and connectedness

결론

우리의 연구는 인간의 발전에 접근성, 그리고 그와 연관된 무역 기회가 중요함을 보여준다. 정기적이고 빈번한 원양 항해가 시작되었던 기원전 1000년 이래로 지중해 해안 전역에서 해상 접근성이 높은 곳일수록 더 많은 고고학 유적지가 발견되었다. 일단 이러한 지역의 이점이 발견되면 그 이후로 몇 세기 동안 대체로 도시화를 유지했다.


재미있는 논문이라 요약 번역해보았다. 대담한 접근이 좋았다. 하지만 실증 연구인지는 모르겠다.

출처는 https://voxeu.org/article/trade-and-growth-iron-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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