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신왕사상의 기원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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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대한 피라미드를 보며 고대 이집트의 파라오를 이야기합니다. 파라오는 원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었다고, 파라오는 신과 다를 바 없었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그랬을까요? 파라오는 항상 신과 같은 존재로 추앙받기만 했을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습니다. 파라오는 수 천년 간 이집트를 지배했고 그의 권력은 시대에 따라 변했습니다. 지금부터 파라오 왕권의 <변천과정>,그 중에서도 파라오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으로 추앙받게 되는지를 발표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우선 파라오라는 칭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파라오>, 오직 이집트의 통치자만이 쓸 수 있다고 널리 알려진 칭호입니다. 하지만 절대권력을 시사하는 이 칭호가 처음부터 그러한 뜻으로 쓰인 것은 아닙니다. 파라오의 이집트어 명칭인 <페르-아>는 본래 ‘궁전’ 또는 ‘세력가’를 뜻합니다. 이는 문자 그대로 왕궁 건물이나 왕실 조직을 의미하는 것으로, 분명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파라오>의 뜻과는 다릅니다. 이집트의 강력한 통치자로서의 파라오는 이 칭호가 쓰이기 시작한지 150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왕>이라는 뜻으로 쓰이게 됩니다.

<파라오>의 뜻이 본디 왕이 아니었다면, 파라오와 신은 또 무슨 관계일까요? 먼저 이집트 <신화>에 대해 간단히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오시리스>는 신의 아들이자 상 하 이집트 전체를 다스리는 강력한 통치자였습니다. 하지만 오시리스가 그의 동생 <세트>에게 살해당하자, 오시리스의 아들 <호루스>는 죽은 아버지의 자리를 놓고 세트와 대결합니다. 이들의 승부는 쉽사리 결판나지 않았습니다. 치열한 대결 끝에 이들은 죽은 후 지하의 신이 된 오시리스에게 판결을 부탁했고, 오시리스는 호루스의 편을 들어줍니다. 마침내 호루스는 이집트의 지배자가 되었고, 시간이 흘러 그의 왕권은 <파라오>에게 계승됩니다.즉 호루스의 승리에 얽힌 신화는 파라오의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기능을 하였습니다.

호루스와 오시리스의 계승자로서파라오는 흔히 <살아서는 호루스요, 죽어서는 오시리스>라 말해집니다. 물론 아까 말씀드렸듯이 파라오가 처음부터 신이라고 생각되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들 신에 얽힌 신화는 이집트의 역사 초기부터 왕권과 밀접한 관련을 지닙니다. 파라오는 기원전 3100년경인 제0왕조 시기부터 자신의 이름을 <세렉크>라는 테두리 안에 기록하였습니다. 보시는 것처럼 세렉크는 송골매의 신 <호루스의 가호>를 상징합니다. 즉 파라오는 호루스의 가호를 받는다고 자칭하였던 것입니다. 신의 권위를 배경으로 파라오는 강력한 왕권을 휘둘렀습니다. 그러나 이 시점의 파라오는 아직 신 그 자체는 아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집트 신화의 또 다른 신인 오시리스와 파라오는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신화에 따르면 오시리스는 세트에 의해 한 번 죽었었지만 다시 부활하여 이집트를 다스립니다. 이집트 제 1왕조부터 시작된 <제드 축제>는 이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파라오가 이집트를 통치한지 30년째 되는 해에 열리던 이 축제를 통하여, 파라오는 오시리스가 죽었다가 부활하여 이집트를 다스렸듯이, 자신의 왕권도 <다시> 시작될거라 선언했습니다. 이 역시 호루스의 가호와 마찬가지로 파라오 절대왕권이 신에 의한 것임을 상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라오 자신이 스스로를 가리켜 신이라 선언하는 일은 아직 없었습니다.

호루스의 가호라는 이집트의 신왕사상은 이후 500년간 이어집니다. 하지만 파라오는 호루스만으로 만족할 수 없었는지 이집트의 가장 강력한 신인 태양신 <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합니다. 이미 2왕조 시기부터 시작된 태양신 숭배는 제3왕조 시기였던 기원전 2630년 경, 호루스를 대신하여 파라오의 <새로운 수호신>으로 등극합니다. 이로서 기존에 파라오만이 쓸 수 있던 세렉크 테두리는 모든 것을 감싸는 태양의 빛을 상징하는 <카르투쉬>로 대체됩니다. 이로부터 100년 후에,이집트 신왕사상은 중대한 변화를 맞게 됩니다.

이전까지 파라오는 호루스와 오시리스, 후에는 태양신 ‘라’로부터 자신의 권위를 부여받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하지만 파라오의 자리는 신이 내린 것일지언정, 파라오 자신은 어디까지나 인간으로서 신의 대리자일 뿐이었습니다. 피라미드 건설이 한창이었던 제4왕조 시기인 기원전 2550년경, 파라오 제데프라는 자신의 이름 에 <사-라>, 즉 라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추가합니다. 이로써 파라오는 단순히 신의 보호를 받는데 머무르지 않고 <신의 아들>로 등극했습니다. 파라오의 <신격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신적인 존재로서 파라오의 권위는 <장례신전>에 의해 극명히 드러납니다. 장례신전은 파라오를 기념하는 신전으로서, 나일강 서쪽에 세워졌습니다. 이는 나일강 동쪽에 신전이 세워진 호루스나 라와 같은 일반적인 신들과도 <대등한> 파라오의 신성을 나타내는 구체적인 증거물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이집트의 신왕사상은 태양신 라 의 숭배와 함께 파라오가 자신을 <라의 아들>이라 칭함으로서 강화되었습니다. 태양 숭배와 파라오 신격화는 뗄 수 없는 관계였고, 이는 기원전 1350년경 제18왕조의 파라오 아케나텐에 의해 절정에 이릅니다. 아케나텐은 태양신만이 이집트의 유일한 신이며, 그의 아들인 오직 자신만이 태양신의 유일한 대리자라 선언합니다. 비록 그의 유일신론적 종교개혁은 실패로 끝났지만 이집트 신왕사상의 절정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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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수업의 발표 대본
논문평: 빈약한 논리, 지나친 범위 설정

논문 요약: 이집트 신왕사상의 기원과 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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