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Elephant Hunters of Bronze Age Syria (2013)

1 minute read

청동기 시대 시리아의 거대 도시 중 하나였던 Qatna의 왕궁 발굴 현장에서 코끼리뼈로 가득찬 방 2개가 발견되었다. 왕궁은 청동기 시대 중기에 건설되어 청동기 시대 말기(1340 B.C)에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코끼리 뼈가 있는 방의 높이는 5m 이상이고 가로, 세로 3미터가 된다. 코끼리 뼈는 고기를 모두 제거한 채 보관되었다. 여기서 발견된 코끼리는 어쩌면 오래 전에 멸종한 시리아 코끼리일지도 모른다. 발견된 뼈를 모아 코끼리를 복원해보니 현대 아프리카 코끼리 수컷만큼이나 컸다. 뼈에는 고기를 위해 도축된 흔적이 없었고, 큰 뼈만 남아있었다. 코끼리 뼈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왕실에서 사냥해 온 코끼리였다든가. 물론 거대한 코끼리 사냥은 기념할만한 행사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방은 외부에 노출된 방이 아니었다. 어쩌면 방 근처의 무덤에 묻힌 자가 사냥한 코끼리일지도 모른다. 대체 청동기 시대 중동에서의 코끼리는 무엇이었을까?

청동기 시대 초기에 관한 증거는 많지 않다. 이 시대 유적 중에는 코끼리 고기를 불에 구워먹은듯한 코끼리 뼈가 발견된 적이 있다. 벽화로 보아 이 시대에는 유프라테스강 중류의 계곡에 있던 숲에서 코끼리를 사냥했다 청동기 시대 중기에는 코끼리 사냥이 활발했다. 이 시대에는 상아 무역이 활발했다는 사실이 발굴과 문서 등으로 증명된다. 시리아 곳곳에서 사냥이 벌어졌다. 왕족의 사냥 행사도 물론이다. 사람들은 코끼리 고기를 먹었다. 청동기 시대 후기의 증거가 가장 많다. 코끼리 상아 무역은 활발했고, 코끼리 뼈는 보석 대우를 받았다. 코끼리 골기 공장도 있었다. 코끼리 경제라 할만했다. 사람들은 코끼리로 무역을 했다. 코끼리가 살지 않는 아나톨리아나 엘람에서는 코끼리 뼈를 수입했고, 사람들은 코끼리를 사냥해 팔았다. 코끼리 뼈는 물론 종교적 의식에도 쓰였다.

코끼리가 많이 살았던 곳은 오론테스강 계곡과 유프라테스강 계곡 중부였다. 초기 철기 시대의 개발이 진행되기 전이라 이곳은 아직 숲이 울창하고 초원이 있는, 코끼리가 살기 좋은 곳이었다. 아시리아 왕들은 이곳 오론테스강 계곡으로 코끼리 사냥을 갔다. 티글라트 필레세르 1세는 여기서 코끼리 4마리를 잡아 산채로 아시리아로 데려갔다는 기록도 있다. 이집트 파라오도 코끼리 사냥을 왔다. 상아를 얻기 위해 120마리의 코끼리를 사냥했다는 기록도 있다. 지배자들에게는 코끼리 사냥이 그들의 위엄을 빛내는 상징적 의미가 있었다. 아마도 Qatna의 코끼리뼈 역시 지배층의 이데올로기적 의미가 있었을 것이다.

오론테스강 계곡이 코끼리 자생지가 아니라 코끼리 농장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코끼리의 강력한 힘과 생활 반경을 생각하면 불가능한 소리다.

결론적으로 Qatna의 코끼리뼈 발굴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서부 시리아에는 코끼리가 자생적으로 살았다. 둘째, 지배층에게 코끼리 사냥은 그들의 위엄을 나타냈다. 물론 경제적으로도 중요했다.

20201103

논문 원본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