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이게 아닌 줄 알아도 조직은 굴러간다. 그렇게 스스로 굴러가다 보면, 거기에 취해있다 보면 무엇이 잘못인지조차 잊는다. 끝내는 파멸할테지만, 그렇게 된 다음에라도 깨달을 수 있을까? 무엇이 잘못이었는지.
일본 제국 육군은 근 100년간 완전히 파멸해버린 조직 중 가장 거대하다. 도대체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가? 본 책의 필자는 단언한다. 제국 육군은 자멸했다. 싸우면 안 될 상대와 싸웠고, 싸우는 도중에도 어떻게 싸우면 될지 몰랐으며,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궁리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끝내 생각을 멈춘채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스스로를 ‘정리’해버린다. 마치 할복으로 끝을 내듯이.
조직의 밑바닥 중 하나로서 이 모든 과정을 거친 필자의 눈으로 바라본 육군은 더없이 비참하다. 그가 겪은 참담한 일 하나하나가 통탄스럽다. 하지만 육군 절대 다수는 이에 대한 자각조차 없다. 적을 상대로 어떻게 이겨야 하는가보다, 당장 옆에 있는 동료의 눈에 어떻게 비치는가가 더 중요하다. 그리고 스스로를 혹사한다. 이기는게 중요한게 아니라, 뭔가 노력하여 하고 있다는게 더 중요했다. 누구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최소한의 합리성조차 조직에 대한 배신이 된다. 결국 그렇게 그저 굴러가는데만 급급하여 온 힘을 소진한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생각한다. 아마도 조직의 이러한 모습은 결코 일본 육군만의 모습은 아닐 것이다. 조직을 위해, 혹은 대의를 위해 희생해야 한다며 구성원의 입을 틀어막는 놈들은 다 똑같다. 패망이 예정되어 있다. 그들은 본인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정말로 그런 각오가 서 있다면 제대로 된 해결책이나 궁리하는게 순서다. 그들에게 이 책을 백번쯤 읽히고 싶다. 물론 읽을 턱이 없고, 읽어도 알 턱이 없다. 탄식만 나온다.
20191005
山本 七平. 2016.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최용우 옮김.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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