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개발 이야기 - 바다 장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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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의 나는 장기를 곧잘 두었는데, 별다른 이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고, 그저 내가 또래 친구들보다 장기를 조금 더 잘 두었기 때문이었다. 당시만 해도 온라인 장기 대전은 아예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장기에 있어서는 늘 득의양양했다. 하지만 이런 나도 맥을 못추는 상대가 있었다. 작은 할아버지였다. 작은 할아버지의 압도적인 실력 앞에서 나는 상대도 되지 않았다. 나는 작은 할아버지를 뵐 때마다 조심스럽게 대국을 청하고는 했다. 그러나 작은 할아버지는 1년에 몇 차례 있는 친척 모임에서나 뵐 수 있었을 뿐이었다. 덕분에 나는 늘 승부에 대한 갈증에 시달렸다.

지금이야 온라인으로 얼마든지 장기 대국 상대를 찾을 수 있는 시대지만, 당시는 아직 온라인 게임이라 해봐야 PC통신으로 ‘단군의 땅’ 같은 머드 게임을 하는게 고작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던 중, 나는 컴퓨터의 엄청난 연산력에 기반한 인공지능 장기 게임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바다 장기’였다. 이 게임을 만난 곳이 초창기 인터넷이었는지, 아니면 PC통신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무튼 당시의 내게 ‘바다 장기’는 엄청난 고수로서, 단 한 판도 이기지 못했다. 뒤이어 만난 ‘장기 고수’라는 프로그램도 마찬가지였다. 나의 연산력은 당시의 최신 컴퓨터(CPU 클럭이 166MHz였던걸로 기억한다)을 이길 수 없었다. 결국 고심 끝에 나는 이들 장기 프로그램의 전술을 모방하기 시작했고, 플레이 스타일도 크게 바꾸었다. 기발하고 공격적인 전술(친구들의 표현에 따르면 사기꾼과 장기두는 것 같다고 했다)로 승부를 보던 스타일에서, 신중하게 상대를 압박해가며 숨통을 조이는 스타일로 바꾸었다. 말이 교묘해졌는데, 한 마디로 말하여 수가 막힌다 싶으면 졸을 전진시켰다는 얘기다. 이는 ‘바다 장기’의 플레이 스타일 그 자체였다.

물론 이렇게 수련했다고 해서 내가 작은 할아버지를 이길 수는 없었다. 작은 할아버지는 나를 쉽게 박살내버렸고, 나의 정신적 스승이었던 장기 프로그램조차도 ‘얘 잘하네’라는 혼잣말 한 번으로 격파해버리셨다. 그 후, 세상에는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를 비롯한 재미있고 자극적인 온라인 게임이 많이 나왔고, 나는 장기에 흥미를 잃었다. ‘바다 장기’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았다.

일본식 장기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이야기는 나의 이러한 옛 추억을 되살려주었다. 읽고나서야 ‘바다 장기’의 스타일이 이해가 되었다. 아직 머신 러닝이 없던 시절이던만큼, 컴퓨터는 내 약점이 보이지 않을 때는 졸을 전진시키며 상대를 압박하도록 프로그래밍 되어 있던 것이다. 졸을 전진시켜 압박에 압박을 가하여 마침내 상대방의 궁에까지 나의 졸이 닿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승부는 결정나게 마련이다. 아마도 일단 컴퓨터의 이러한 전략에 휘말린다면 이기기 쉽지 않을 것이다. 컴퓨터를 컴퓨터의 방법으로 상대하려 했으니, 내가 이기긴 애당초 글렀던 것이다.

이제 내가 ‘바다 장기’를 즐기던 시절로부터 20년 하고도 수 년이 지났다. 기술의 발전은 이미 혁명적이어서, ‘바다 장기’ 시절에는 시도조차 되지 않던 다양한 기술들이 이미 대중화되었다. 내가 장기로 컴퓨터를 이길 수 있을 가능성은 앞으로 영원히 없다는 말이다. 그동안 나는 장기를 즐기던 초등학생에서 컴퓨터로 밥을 먹고 사는 개발자가 되었다. 그리고 개발자로서 이러한 기술의 발전은 즐거운 일이다. 발전은 어디까지 계속될까? ‘바다 장기’를 이기기 위해 절치부심했던 그 시절처럼, 개발자인 지금도 그저 끊임없이 따라붙을 수 밖에 없다.

야마모토 잇세이 , 2018, 인공지능 개발 이야기, 남혜림 역, 처음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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