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복식당

5 minute read

몇일 전, 출근길에 분주히 움직이는 한 무리의 일꾼들이 눈에 띄었다. 식당을 철거 중이었다. 영업을 중단한지 한 달 만이었다. 그곳은 내가 즐겨찾던 식당이었다.

virtual-box-error

퇴근길에 다시 식당을 보니 어느새 내부가 깔끔하게 들어내져 있었다. 몇 일 후에는 간판마저 바뀌었다. 아쉬운 마음에 그간 해왔던 이 식당에 얽힌 생각을 조금 풀어볼까 한다.

나는 동복식당이 개업할 적부터 쭉 지켜봐왔는데, 이 식당에 내 출퇴근길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며 가며 언젠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늘 생각 뿐이었다. 사람들이 조용히 술잔을 기울이는 오붓한 모습을 음식점 창 밖으로 바라보고 있노라면, 혼밥을 하겠답시고 식당에 들어가 앉기가 부끄러웠다. 문간에 떡 하고 박혀진 만두교자 전문점이라는 명패도 그러했다. 아무튼 나는 정찬으로 만두를 먹는데 익숙한 사람은 아니니까. 그렇게 거진 2년이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나는 근 15년을 독거 아재로 살아온 탓에, 혼밥을 위한 식당을 고르는 안목이 트였다. 여러 비법이 있지만 그 중 가장 틀림없는 지표는 바로 혼밥하는 사람의 비율이다. 이래 저래 해도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고, 혼자서는 밥 먹으러 가기를 귀찮아 하는 사람이 많다. 심지어 나 같은 사람은 혼자 밥먹기가 귀찮은 나머지 그냥 굶어버리기가 일쑤다. 하지만 이런 나 조차도 가끔은 생각나는 그런 음식이 있는 법이고, 귀찮음을 이겨낼 정도로 맛있는 식당은 흔치 않다는 논리다. 때문에 나는 늘 나만의 혼밥 레이더를 운용하며 갈만한 식당을 물색하는데, 언제부터인가 동복식당이 나의 레이더에 잡히기 시작했다. 분명 인싸들로 가득한 곳이었는데, 괴상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늦잠을 잔 터라 이미 식사 시간은 지나버렸고, 주말에 밥 먹을 곳은 없고, 딱히 먹고 싶은 것도 없는 날이었다. 동네를 배회하다가 동복식당이 텅 비어 핸드폰을 보고 있는 주인 아재 말고는 아무도 없는 모습이 보였다. 이에 용기를 얻어 일단 들어가 앉았다. 주인장에게 메뉴판을 달라고 하니, 중국어와 한국어로 써져있는 책받침 비스무리한 무언가를 건네준다. 메뉴는 단 하나 뿐이었는데, 만두도 교자도 아니었다. 어찌된 일인지 이곳은 마라탕 가게가 되어 있었다. 어짜피 만두든 뭐든 어떤 메뉴든 상관없던 나는, 주인 아저씨에게 마라탕 한 그릇을 달라고 외쳤다. 그러자 주인 아재는 중국어로 뭐라 뭐라 하면서 손짓 발짓으로 식재료 냉장고를 가리키는 것이었다. 중국어를 모르는 나지만 눈치로 보아하니, 냉장고에서 내가 먹고픈 식재료를 골라 세숫대야에 담아주면, 이걸 재료로 마라탕을 끓이는 방식이었다. 다행히 마라탕을 몇 번 먹어본 경험이 있던지라 적당히 골라 주인 아재에게 건냈다. 소고기도 추가했다. 주인 아재의 추천 때문이었는데, 알아듣지 못할 외국어인데도 다 알아듣게 만드는 놀라운 영업력이었다.

주인 아재가 마라탕을 끓이는 동안 탁자에 앉아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째 실수한 것 같았다. 최근의 마라탕 유행 때문에 나 역시 마라탕을 몇 번 먹어본 경험이 있었다. 그 결과는 매번 좋지 않았는데, 먹을 때는 제법 맛있었지만, 늘 폭풍같은 설사가 이어졌기 때문이다. 애당초 마라탕이라는 물건이 대책없이 매운 요리이기 때문이겠거니 하며, 폭풍 흡입과 폭풍 설사의 사이클을 일종의 순리처럼 받아들이고 있던 나였다. 하지만 이미 주문은 들어갔고, 나는 자기합리화를 시작했다. 어짜피 주말 중에 집에만 있을 계획이니 설사를 해도 큰 문제는 없겠지?

곧 내가 고른 재료들이 하얗고 빨간 마라탕 국물에 푹 고아져서 나왔다. 괜히 억지로 단 맛 등 다른 맛을 넣지 않은, 마라탕 다운 매운 맛이었다. 다행히도 예전에 대림동 먹은 마라탕 만큼은 맵지 않았다. 그렇게 혀를 얼얼해하며 건더기를 골라먹고 있는데, 나도 모르는 새에 반전이 다가왔다. 절반 정도 먹으니 마라탕이 더이상 맵지가 않았다. 시원하면서도 느끼하지 않은 고기국의 맛이 느껴졌다. 마라의 강한 자극에 혀가 마비되어 그런건지 어떤건지 모르겠으나, 어쨌거나 아주 만족스러웠다. 나는 원래 마라탕을 먹으면서 절대 국물을 먹지 않는데, 여기서는 국물 한 방울까지 남기지 않았다. 내가 이렇게 마라탕을 허겁지겁 해치우는 사이, 중국인 남학생 한명이 홀로 가게에 들어와 마라탕을 한그릇 시켰는데, 먹는 내내 주인 아재와 중국어로 떠들고 있었다. 이것의 대륙의 맛인가… 그날 밤, 나는 마라탕을 먹었음에도 설사를 하지 않았다.

이후로 동복식당은 내가 즐겨찾는 가게가 되었다. 맛있고, 혼밥하기에 적당하고, 무엇보다 속이 편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거의 매일같이(!) 이 식당을 드나들다보니 괴상한 점이 있었다. 일단 손님의 대부분이 중국인 유학생이었다. 그리고 여기 오는 중국인들끼리는 얼추 알고 지내는 사이 같았다. 다른 테이블 손님들과 마치 반상회하듯 이야기하고, 주인장하고도 이야기를 하는데, 죄다 중국어라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아들을 수 없었다. 중국에 여행온 기분으로 홀로 앉아 마라탕을 들이키고 있으면 가끔씩 한국인 손님도 오는데, 대부분은 왜 만두 교자 전문점에서 만두를 안파는지에 대해 황당해하며 주문없이 곧 가게를 나섰다. 물론 주인장과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영업을 할 기회도 없었다.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가 내가 마음 내킬 때면 한국인들에게 사정을 설명해주었다. 여기 이제 만두 안판다. 마라탕만 판다. 식당 주인은 한국어 못한다. 하지만 대체로 귀찮아서 못들은척 아무 말 없이 마라탕을 들이켰다. 주인장은 딱히 내게 고마워하지도, 떠나간 손님을 아쉬워하지도 않아보였다. 물론 간혹 나처럼 어찌어찌 마라탕을 먹으러 온 한국인들도 있기는 했다. 대부분은 마라탕 외길 인생이었다.

이러는 사이, 동네에서의 마라탕 유행은 더욱 거세어졌고, 여기저기서 봄날 꽃 피듯 마라탕 가게가 생겨났다. 어떤 마라탕집은 점심시간이면 줄을 서서 먹어야 했다. 어느새 마라탕의 팬이 된 나는 인근의 모든 마라탕집을 순례했는데, 하나같이 기대에 못 미쳤다. 어느 집은 너무 달았고, 어느 집은 그냥 맵기만 했다. 어느 곳 하나도 동복식당만큼 깊은 맛을 내는 곳이 없었고, 설사나 쏟게 만들 뿐이었다. 이제는 차이나 타운이 되어버린 대림동 마라탕집 정도나 동복식당과 비교할만 했는데, 이곳은 설사를 유발했기에 역시 내게 먹을만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동복식당은 손님이 줄을 서기는 커녕, 만두 찾아온 손님을 내쫓기나 하고 있었다. 어느 날은 A4용지에 안내사항이 적혀 카운터에 붙여졌는데, 구글 번역기를 어떻게 돌렸는지 문법에 전혀 맞지 않는 한국어가 적혀있었다. 어떻게 구글 번역기를 썼는지를 알게 됐느냐면, 가게 주인과 불가피한 사정으로, 예컨대 공기밥을 추가했는데 돈을 안냈다던지, 하는 일로 대화를 해야하는 일이 있으면 꼭 구글 번역기를 통해 의사소통을 했기 때문이다.

일이 많아 퇴근이 늦어진 날이었다. 9시가 다 되도록 저녁밥을 먹지 못했기에 이 날도 동복식당에서 마라탕을 해치워볼까 하며 둘러보는데, 아직 가게 조명도 끄지 않은 상태인데도 한 무리의 중국인들이 가게 문을 막고서 단체로 담배를 피며 떠들고 있었다. 어떻게 중국인인지 알았냐면 여태 동복식당을 드나들며 자주 보던 얼굴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동복식당은 다시 문을 열지 않았다. 처음 몇 일은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고향에라도 잠시 갔겠거니 싶었다. 늘 영업시간이 제멋대로이기도 했다. 하지만 1주일이 지나도 식당은 문을 열지 않았고, 곧 가게를 내놓는다는 글이 A4용지에 프린트되어 문에 붙여져 있었다. 그러고보니 문을 닫기 이전에도 가게를 내놓는다는 종이를 문 앞에 붙여두고 영업을 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때는 몇 일 붙여져 있다가 사라져서 주인장이 마음을 바꿨겠거니 싶었는데, 이번엔 아니었다. A4용지에는 연락처도 없이 WeChat QR코드만 박혀 있었는데, 전세계에서 중국인, 그리고 중국인과 엮인 사람들만 쓰는 이 메신저의 QR코드만 덜렁 새겨놓은 모습에 중국인에게만 가게를 팔겠다는 이야기인가 싶어 아연해졌다. 호기심에 WeChat앱으로 QR코드를 찍어보니, 주인장의 딸(추정)로 보이는 사람의 프로필 사진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어짜피 한국말은 하지 못하니, WeChat QR코드를 박아놓은게 당연하다 싶었다.

가게를 내놓는다는 A4용지는 몇 일 지나지 않아 사라졌다.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매일 동복식당이 문을 열었는지를 확인했다. 물론 식당이 부활하는 일은 없었다. 그렇게 한 달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동복식당은 철거되었다. 내게 아무 말 없이 마라탕을 끓여주고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던 주인장 가족(추정)은 고향으로 돌아갔나보다 싶다. 말도 통하지 않는 나라에 와서 무슨 배짱으로 그들이 식당 영업을 시작했는지 모를 일이다. 하다못해 만두 교자 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떼어버리고 A4용지에 마라탕이라 써서 붙어두기만 했어도 장사는 훨씬 잘 됐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 맛은 진짜였고, 나는 이후로 마라탕을 먹지 않는다. 아쉬운 마음으로 동복식당을 추모하며 글을 마친다.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