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시조- 이문열

2 minute read

이문열 소설론-번뇌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우리 세대는 줄곧 이문열의 영향 아래 있었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강렬했던 인상의 그 소설은 초등학교 6학년 국어 교과서에 무려 全文이 실려 그태껏 계속되어 온 아동 문학의 시기에 종점을 찍었다. 이문열의 그림자는 문학을 대입과 나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때에도 계속 되었다. 서울대에 가야만 한다는 이에게 그의 『삼국지』는 정상을 향한 계단의 자연스런 일부였다. 의무감은 곧 탐닉으로 변했고, 나는 삼국지에 깊이 빠져들었다. 깨어났을 때, 나는 이미 대학생이었다. 이문열과 함께 한 10년은 결코 가벼운 시간은 아니었으나 개인적인 관심으로 시작한 역사 공부와, 잊을 만 하면 터져 나오는 그의 시국 발언은 나의 생각과 심히 엇나갔다. 때문에 한 때 품었던 깊은 사랑만큼이나 역사학도로서 그를 평하는 나의 말은 가시 돋쳤다.[1] 그러던 어느 날, 인터넷의 한 게시판에서 나와 이야기를 나누던 누군가의 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문열은 『금시조』만으로 평가 받기 충분하다.’ 하지만 나는 이문열에 대한 개인적인 거부감을 이유로 금시조와 맞닥뜨리길 오랫동안 회피해왔다.그리고 이제 비로소 금시조를 읽는다.

시대는 신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구한말, 고아 고죽은 秋史의 傳人인 서화가 석담의 집에 맡겨진다. 고죽은 천부적인 재능으로 석담의 제자가 되나 예술에 대한 견해차로 인해 누차 애증서린 갈등을 빚는다. 마침내 석담이 죽자 고죽은 유미주의적인 자신의 길을 걷는다. 시간이 흘러 고죽은 죽음을 준비하며 자신의 일생을 돌이킨다. 그러나 예술의 궁극적 성취라 할 수 있을 금시조를 보는데 실패한 그는 끝내 자신의 작품을 모두 불태운다. 최후의 순간,그는 불길 위에 치솟는 금시조를 만난다.

금시조는 이와 같이 처음부터 끝까지 치열한 질문제기의 장, 논쟁의 장이다. 그러나 저자는 두 상반되는 예술론의 승자를 명시하지 않는다. 그만큼 집요하게 파고 든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하지만 추측조차 불가능 하지는 않으니, 금시조, 궁극적 성취의 상징으로 묘사된 그것은 최후의 순간이나마 고죽에게 분명히 나타난다. 어쩌면 이를 통해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를 궁구할 수 있지 않을까? 이를 위해 우선 규명해야 할 문제는 고죽이 꿈에서 보았던 금시조를 진실로 금시조라 할 수 있는지의 여부다. 예술의 대성이라 할 수 있을 금시조는 이미 고승에 의해, 석담에 의해 분명히 정의 내려진 바 있다. 세상의 악을 물리치는 불법의 수호신으로서 말이다. 그러나 고죽이 꿈에서 목격한 금시조는 결코 그렇지 않았다. 더없이 아름다우나 그저 하늘을 날아다닐 뿐이었던 그것은 분명 사이비에 불과했으리라. 고죽은 이를 깨달았기에 일생의 작품을 불태웠고, 그 후에야 비로소 금시조를 볼 수 있었다. 나의 추론이 맞다면 결국 이문열은 석담과 고죽의 일생에 걸친 대립에서 석담의 손을 들어준 듯 하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잠정적일 뿐이다. 고죽과 석담으로 대표되는 예술론의 대립이 예술이 지닌 숙명이리라는 암시는 훗날의 초헌을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훗날 이문열이 보인 행적도 이러한 추측을 뒷받침한다. 이문열이 『호모 엑세쿠탄스』의 머리말에서 밝혔듯이 그는 현실세계에 대한 생각이 문학으로부터 배제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격렬히 비판한다.[2] 마치 석담의 대나무가 그러했듯이 말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문학은 문학으로만 보아 달라는 그의 당부는 고죽 생전의 그것이 아니었는지?[3] 어쩌면 이문열은 자신의 내적 갈등, 소설을 쓰는 도중에도 미처 결론짓지 못한, 어쩌면 영원히 결말을 보지 못할 내적 갈등을 주제 삼아 소설의 형태로 담아내었다고 보아도 좋지 않을까. 그리고 끝내 이러한 갈등 속에 번뇌하던 고죽, 다름아닌 고민하고 도전했다는 사실 자체야말로 최후의 순간이나마 금시조를 목격할 수 있었던 자격이지 않았을까. 어쩌면 고죽이 달성한 위대한 실패,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경지야 말로 이문열이 바라 마지 않는 길이 아닐지?


 

[1]이문열은 正史를 운운하며 三國演義를 평역하던 중, 三國志의 저자인 陳壽가 제갈량에 의해 처벌당한 陳式의 아들이었다고누차 이른다. 그러나 이는 근거 없는 이야기다.

[2]이문열은 『호모 엑세쿠탄스』 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소설이 인간의 얘기를 하는 것일진대, 세상에 정치와 무관할 수 있는 소설이 어디 있겠는가.’ 이문열, 『호모 엑세쿠탄스』, 권1, 민음사, 2006, p6.

[3]‘제발 소설은 소설로 읽어 달라.’ 전게서, p8.

Categories:

Updated:

Leave a Com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