흡혈귀 - 김영하 소설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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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하 소설론-吸血文學鬼
모든 소설은 재미있어야 한다. 그 재미가 슬픔이 되었건 감동이 되었건 대리만족이 되었건 간에 말이다. 8년 전, 우연히 김영하의 소설 『엘리베이터에 낀 그 남자는 어떻게 되었나』를 읽었다. 무거운 척 위엄을 떨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곱씹는 맛이 있던 그 소설은 문학에 대한 나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켜 주었다. 경쾌했던 상기 작품과 비교하면 다소 무게를 두었으나 내가 원하는 바를 얻기에는 부족함이 없었다.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소설가 김영하는 누군가의 편지를 받는다. 그 편지는 믿기지 않는 일을 다루고 있는 한 편의 수기였다. 편지의 필자는 덧없는 연애를 반복하다 신비스런 매력을 지닌 남자에게 끌려 결혼한다. 세상 모든 일을 알고 있으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초월한 듯 행동하는 그에게 의문을 느낀 여자는 남편의 뒤를 캐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가 불멸의 흡혈귀임을 확신한다. 일상을 원하는 여자는 그와 이혼을 결심하며 편지를 마친다. 그리고 김영하는 그녀 역시 흡혈귀가 됐으리라 짐작한다.

기묘한 분위기의 소설이다. 이 소설의 기기묘묘함은 시점과 구성의 탁월함으로써 더욱 증폭된다. 제한된 시야와 정보만을 제공하는 1인칭 시점과 편지의 형식을 빌려 사실감을 부여함으로써 현실과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는 3중 액자식 구성의 묘한 어울림은, 메타픽션을 통해 리얼리티/픽션이라는 단순한 이분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과 동시에 틀의 파괴를 통한 리얼리즘의 해체를 보여준다.[1]

그렇다면 이 작품에서 말해지는 ‘흡혈귀’란 누구인가? 한 때 평론계 내에서 분분했던 소문에 의하면 시인이자 비평가 남진우가 그가 아닐까 하는 이야기가 있다.[2] 진실이야 어찌되었건, 굳이 작가를 흡혈귀로 설정한 데에는 날카로운 점이 있다. 나는 지난 5년간 非문학인으로서 문학 동아리 활동을 해왔다. 그곳에서 여러 작가 지망생을 만나며 한결같이 느낀 것은 그들이 통념적으로 생각되는 현실, 즉 세상과 인간에 대해 진지한 접근은커녕 당장의 밥벌이에 급급한 현실과 유리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으로서 어찌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이러한 비현실적 성향이 아니라면 어찌 그들이 문학을 할 수 있겠는가. 흡혈귀, 초현실적 존재야말로 그들을 가리킬 수 있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문학에 대해 거리감을 갖는 이유는 바로 이가 아닌가 싶다.

다만 한가지 쉬이 이해 가지 않는 것이 있다. 소설 말미의 반전, 결국 그 여자도 흡혈귀가 되지 않았는가 생각하는 대목의 의미는 무엇인가? 어쨌거나 김영하가 남진우와 신경숙의 결혼을 예견하고 이 소설을 쓰지는 않았으리라. 그렇다면 본의 아니게나마 흡혈귀의 고민을 공유한 자의 종국을 암시하는 건 아닐지?


 

[1]김재경, 「김영하 소설에 나타난 환상성 -<흡혈귀>와 <고압선>을 중심으로-」, 『현대소설연구』, vol44, 2010, pp109.

[2]신형철, 「피 빠는 당신, 빛나는 당신」, 『한겨례 21』, 2009.4.10, 제7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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