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은 어디서 왔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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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단이 필요한 순간, 무엇이 옳은지 또는 어떻게 해야하는지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헤겔, 롤스, 벤담 등 다들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사상가들이다. 그리고 이들은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기 위하여 늘 하나의 가정을 한다. 인류 최초의 사회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각자 설득력 있는 가정을 하고 있지만, 나는 늘 의문이었다. 그걸 어떻게 장담할 수 있는가?

진화론에 따르면 인류의 조상은 지금의 영장류와 같은 조상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재의 영장류를 연구함으로써, 그리고 그들이 이룩한 사회를 연구함으로써 인류의 조상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그리고 현대 인류가 살고 있는 모습, 특히 끝없는 분쟁과 싸움의 근원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은 이러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영장류학과 사회생태학의 연구성과에 따르면, 영장류가 구성하는 사회 혹은 사회를 구성할지 여부는 먹이, 성, 천적에 달려있다. 이 세가지 조건에 따라 침팬지든, 고릴라든, 여우원숭이든 각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놀랍게도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인간이 이루었을 최초의 사회조직인 가족을 살펴보자. 인간은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해 가족을 이루었고, 가족 단위로 먹이를 공유하며, 천적으로부터 서로를 지켰으리라.

이러한 가정을 두고 수렵채집민 사회를 보면 놀랍도록 들어맞는다. 농경이 시작되기 이전, 수렵과 채집은 수 만 년 동안 인류의 생존 방식이었다. 이로서 우리는 인류 최초의 사회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가족을 최초의 단위로 하는, 식량을 공유하며, 결혼을 통해 연결된 150명 남짓한 규모의 부족이다.

하지만 농경을 위해 정착 생활이 시작되며 부족 간 다툼에서 물러설 수 없게 되고, 언어를 통해 개개인이 집단에 소속감을 갖기 시작하며, 전쟁이 시작됐다. 계속 되는 싸움은 원한과 복수를 낳고, 마침내 영원히 끝나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영원한 싸움은 모든 생물 중 인류만의 현저한 특징이 되었다.

나는 본래 철학보다는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철학자들의 실증없는 논지 전개에 쉽게 싫증을 내는 사람이다. 덕분에 이 책에 퍽 흥미를 가질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최초의 인간들은 무엇을 보았던걸까? 그들은 어떤 결정을 내렸기에 이 세상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나는 이 책을 좋아하지만 몇 가지 의문은 떨칠 수 없었다.

첫째, 평화로운 수렵채집민이라는 가정은 정말 옳을까? 부시맨 등 현재까지 남아있는 수렵채집민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인류가 수렵채집민이었던 시절에는 다툼이 없었다고들 말한다. 하지만 이러한 학설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주장도 많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원시 전쟁’ 책에서는 법과 제도가 정비되지 않았던 먼 옛날일수록 분쟁으로 인한 사상자가 더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더 많은 데이터를 근거로 들었다.

둘째, 영장류에 대한 꼼꼼한 논의와는 달리 인류에 대한 논의는 대단히 과감하다. 논증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선언이라 보일 정도다. 다른 어떤 영장류보다 많이 연구된 영장류인 인류가 오히려 다른 영장류보다 관찰하기 어렵다는 아이러니함은 안타깝다. 아마도 인간 사회의 근원에 대한 주장이 구구한 이유는 이 때문이리라.

이상의 의문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책을 좋아한다. 대중서인만큼 쉽게 읽히기도 한다. 도대체 인간 세상이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그리고 해결할 방법은 없는가 하는 의문을 이 책은 멋진 접근 방법으로 풀고자 한다. 제 아무리 엄밀한 철학적 논의를 한들, 직접 보고 관찰하는 것 이상의 방법이 있을까? 수많은 탁상공론에 지친 분들께 추천한다.

山極壽一. 2015. 폭력은 어디서 왔나. 한승동 옮김. 곰출판

2019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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