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학계의 십자군 본질 논쟁과 연구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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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명: 서양학계의 십자군 본질 논쟁과 연구동향

1.십자군 본질 논쟁-십자군이란 무엇인가?

ⓐ전통주의자(traditionalist)의 입장
1095년에 시작되어 1099년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이후 200여년간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일부 지방을 지배했던 기독교도의 군사적 행위
성지의 탈환과 방어를 목표로 하며 무슬림을 상대로 한 전쟁
원정의 목표와 장소의 의미를 강조한다

ⓑ다원주의적(pluralist) 해석
동방원정만이 십자군은 아니다
시공간적으로 다양한 십자군이 존재했다 주장-스페인 레콩키스타, 발트해 십자군, 후스 십자군, 알비 십자군, 레판토 해전 등
십자군의 본질을 규정하는 요소로서 더이상 십자군의 목표와 특정 장소의 정보은 의미를 갖지 못함. 오히려 누구에 의해서 어떻게 조직되는가에(교황과 바티칸) 달려 있다

ⓒ통합주의자들(generalists)의 해석
신을 위해 싸운 기독교도의 모든 전쟁이 곧 십자군
십자군을 정의하려는 시도를 '근대적 관점으로 과거를 살피는 인위적이고 잘못된 것'이라 비난한다

ⓓ대중주의자들(popularists)의 해석
십자군을 종교적 차원의 민중운동이라 해석

2. 십자군 개념의 재활용 역사
십자군은 환상에서 시작되었다. 아무도 십자군의 실체를 알지 못했다. 십자군은 다양한 계층의 다양한 욕망이 우발적 분출이었다
그럼에도 1차 십자군의 놀라운 성공은 '십자군의 성공신화'를 낳았고 이 성공신화가 후속 십자군의 원동력이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십자군시기 당대인들은 십자군을 특별히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이 전쟁을 가리키는 용어는 이전에 사용되었던 순례의 용어와 달라지지 않았다. 13세기 교황에 의해 십자군이 조직화 되기 이전에 오늘날 우리가 십자군이라 부르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는 없었다
중동의 마지막 기독교군이 추방된 후, 중세 말엽인 1581년 출간된 <타쏘>의 시 [예루살렘 정복Gerusalemme Liberata]의 히트로 십자군 이야기는 환상의 영역이 되었다
계몽주의 시대에 십자군은 정의롭지 못한 전쟁이란 낙인이 찍혔다
낭만주의와 민족주의 시대에 십자군은 다시 신화화 되어 호의적으로 묘사되었으며 십자군에 대한 학문적 접근이 시작되었다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서 십자군은 식민운동의 원형으로 간주되어 각국의 민족적 자부심으로 승화되었다
십자군의 이미지는 이스라엘 건국과 911테러 이후 오늘에 이르렀다

3.십자군 연구의 최근 경향
ⓐ국제화-범국가적 학술 단체의 탄생
ⓑ지방사적 맥락에서의 재조명(예를들자면 샹피뉴 지방과 십자군의 관계)
ⓒ십자군에서 여성의 역할 연구
ⓓ커뮤니케이션학적 관점에서의 연구(ex-교황과 성직자들의 십자군 설교와 선동의 문제)
ⓔ십자군과 무슬림의 상호 인식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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