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하나라의 수도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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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명: 중국(中國) 하대(夏代) 고고학연구(考古學硏究)의 새로운 진전 -하남(河南)의 신밀신채(新密新砦) 유지(遺址)를 중심으로- 

신자유적-하나라 초기 왕도 추정

신자유지의 위치: 하남성 정주시 밀현(현재 신밀시) 신자촌(p.6)

시기: 용산문화 후기-이리두문화 초기에 해당(p.10)
용산문화 만기(기원전2000~1900)-신채기(1850~1730)-이리두문화 조기(1750)의 3기에 걸치는데
2기인 신채기에 가장 번성했고 이리두문화기에 접어들어 극히 쇠퇴하며 이리두문화의 도기가 보인다

장대한 성벽(p.11)

신자성지의 동쪽 성곽과 북쪽 성곽은 동서 방향의 자연도랑을 이용하였고 내벽은 가지런히 쌓아、흙을 쌓아올려 축성하였다. 그 중에 동쪽 성곽의 남반부는 쌍계하의 옛 하도에 크게 훼손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남북 방향의 성곽은 잔존길이 160미터 깊이는 4미터 이상이다. 북쪽 성곽은 동서로 길이 924미터 깊이는 5에서 6미터다 新砦城址的東牆和北牆是利用一條東西向自然沖溝的 內壁修整填土夯築而成的。 其中,東牆南半部大部被雙洎河故河道沖毀,現存南北殘長160、自深4D不底。北牆東西長924、深5~6 米

용산문화 말기에서 신자기에 이르기까지의 성곽과 해자가 보존되어 있는 걸로 보아, 후기 성곽과 이리두문화 시기 해자의 파괴는 없었다. 고로 이들 성곽이 공격에 노출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용산문화 말기와 신자기의 성곽 높이는 고루 9미터 이상이다至於龍山文化晚期和新砦期城牆 及護城河的寬度,因遭受後期城牆和二裏頭文化時期壕溝的破壞而不能肯定,不過從已經暴露出來的牆體觀察,無論是龍山文化晚期還是新砦期城牆寬度均在9米以上。

쇠퇴

모든 성지는 하대 초기에 건설되어 말기에 가면 모두 훼손되었으니 아마도 이리두문화 1기까지는 어찌어찌 사용되었으나 그 이후에는 버려졌으리라整個城址建造於夏代早期偏晚階段,使用至大約二裏頭文化一期時已經廢棄。
내성과 왕궁(추정)이 존재

신자성지의 내성은 성의 가운데에서 북쪽으로 치우친 가장 높은 지대에 있으며 대형건축의 유적이 보인다 在新砦城址“內城”中部偏北的遺址最高處發現“大型建築”遺跡

 

현재 조사로 드러난 바 건축물은 바로 동서향으로 刀자의 형태를 띄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부분은 동서로 길이가 92.6미터, 남북으로 너비 14.5미터, 총 면적은 1천여평방미터에 달한다現已查明該建築爲整體呈“刀”形,主體呈東西向,現存東西長92.6 米、南北寬14.5米,總面積達1 千餘平方米。

궁전으로 보이는 가장 거대한 건축물 유적에서는 대로가 뻗어져 나가며 그 주위엔 기둥의 흔적이 발견되지 않는다
우임금의 도성으로 보이는 이 유적은 사서 기록과도 일치한다
-수경주,회남자,한서 무제기,금본 죽서기년,고사기년,통전,오월춘추,사기 하본기,제왕세기,좌전 소공4년조,목천자전(;;)
특히 수경주 22권에서 제시하는 지리 설명과 일치함이 결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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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대 중국의 성곽이 대체로 정사각형을 지향하며, 내성과 외성이 크게 훼손되었다는 사실을 감안해 본래의 규모를 상상한다면 고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이상의 거대도시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또한 수경주의 정확함이 상상 이상일지도 모른다는 점, 의심스럽지만서도 입 안에서 조심스러운 이야기가 스믈스믈 맴돌아 참을 수 없을 지경이다.

    주: 위 논문과 논문에서의 연대 비정 등은 모두 단대공정의 성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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