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한, 백제 관련 민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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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 주: 아래 민담과 주석은 [천안의 민담(성환편),2009] 본 민담집의 조사일시는 2008년 9~12월이다.

도하3리 p.277 - 마한시대 도읍지
[민담1/마한시대 도읍지]
(조사자: 옛날부터 전해오는 얘기 있잖습니까. 아시는 대로 설명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우리 마을을 가리켜서 돼리라고 합니다. 도야라고도 하고요. 지형이 또아리같다고 해서 또아리라고 부른 것이 뙈리가 됐다가 돼리가 되었다고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예전부터 마한시대1)의 도읍지였다고 하는 말이 계속 전해 내려 왔다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 마을의 북쪽으로는 안궁리의 궁말, 궁리 같은 지명이 많이 있고요. 남쪽은 흑암리거든요. 거기에 오리골2)이 있어요. 여기를 위례골로 보는 얘기도 있어요. 동쪽은요 차령산맥의 지맥으로서 위례산성이 자리하고 있고요. 서쪽은 아산만으로 연결되는 곳입니다. 특히 우리 마을이 옛 직산군 지역의 성환-입장의 북쪽으로서 야산지대이고요. 주변은 기름진 옥답이 펼쳐있다는 것이고 그 중심에 도하3리가 있다는 점이 중시된다고 봅니다. 아직 백제초도3)의 위치가 미상이지만 우리지역이 마한의 목지국4)설도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옛날부터 마한시대의 도읍지라고 전해내려 온 얘기를 귀담아 들을 필요성이 있다고 봅니다. 도야라고 하는 곳은 옛날에 쇠를 다루던 곳이라고 하거든요. 여기도 마한시대에 있던 곳이 아닌가 보는 것이지요.
주1)마한시대: 구 직산 지역은 마한 54개국 중에서 목지국의 영역이었다. 천안지역은 신운신국으로 보기도 한다.
주2)오리골: 군부대 보호구역내 포함되어 있으며 사계가 탁 트인 야산이다. 토기 편등이 다수 출토되고 있고 인근에 '삼한이보'가 있고 동쪽으로 위례산성이 있다.
주3)백제초도: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는 '하남위례성'을 말한다. 현재까지 미상지명으로 남아 있다.
*옮긴이 주1: 도하2리 사람들의 이야기에 의하면 자기 동네의 보련산이 호랑이 산이고 옆동네인 도하3리 마을의 옛 이름인 '돼리'는 호랑이 밥 돼지에서 나왔다 한다.
*옮긴이 주2: 보련산에서 밭을 갈면 지금도 깨진 기왓장이 나온다 하며 도하2리 주민들의 옛 거주지라 하는데 시기와 이유는 불명이라 한다.
*옮긴이 주3:성환읍 민담 중 마한과 백제 이야기가 나오는 지역은 도하리,수향리,안궁리의 성환 동북쪽에 집중되어 있다. 비옥한 전답 및 지리적 위치는 위 진술 그대로다.

수향1리 p.222 - 권문세가 집성촌
[민담2/권문세가 집성촌]
(조사자: 백제 때 관 터1)라고 말씀을 하셨는데 그 부분을 마을 역사하고 해서 좀 더 상세히 말씀해 주시지요.) 우리 마을의 역사요? 잘은 몰라도 백제 때 까지 올라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마을 이름 중에 지족향2)이란 곳이 지금은 1리인데 이 동네가 백제 때 재상들이 퇴직해서는 이곳에 모여 살았다고 하거든요. 헌데 이만하면 족하지 않느냐는 뜻에서 지족향이라고 했다고 합니다.(이하생략)
주1)백제 때 관 터: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이 지역이 백제 초기 위례성시절에 온조를 보필한 재상들이 이곳에 모여서 살았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권문세가들의 저택을 보고 하는 말로 추정되고 있다.
주2)지족향(知足鄕): 백제 때 재상들이 모여 살면서 분수를 지키며 이만하면 족하지 않느냐는 의미로 지족향이라는 지명을 썼다고 전해온다.
*옮긴이 주: 수향리의 본래 이름은 지족향(다른 이름으로는 지질켕이,지진겡이)이라 했다.

수향4리 p.234 - 주석3 관아
[민담관련지명]
6)관터 길: 수향4리에서 수향1리의 관 터 지역을 칭한다. 옛날 이곳에 관아3)가 있었다고 전하여 온다.
주3)관아(官衙): 수향리는 위례성지역이라고 하는 구 직산현의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옛날 백제시대에 퇴임한 재상들이 모여살고 있으니 그때 당시 권문세가들의 저택을 보고 관아라고 했는지 알 수 없다. 또 한 가지는 흑암리의 오리골을 위례성시대의 중심지로 볼 경우 수향리가 주변으로서 특정 목적의 건물이들어 설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과제만 상정해 볼 수 있을 뿐이다. 필요하다면 발굴조사가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옮긴이 주: 관터길에 얽힌 특별한 이야기는 없다.

안궁1리 p.235 - 왕실의 땅 궁말
[민담1/왕실의 땅궁말]
(조사자:안궁리는 지명에서도 보이듯이 궁자가 들어있습니다. 먼저 지명에 대해서 말씀해 주시지요.) 아마 잘은 몰라도 천안에서 궁(宮)자가 이렇게 많이 있는 동네는 안궁리 뿐일 겁니다. 궁들1), 궁말, 궁평, 궁리, 궁뜰, 궁터, 궁답, 안궁 같이 여러가지 이림이 나옵니다. 이웃에 있는 평택에도 궁자가 있어요. 신궁리, 평궁리, 궁뜰 같이 궁자가 많이 있지요.
옛날에 안성천이 큰 하천인데 이 하천을 정비를 크게 해서 평택 땅이 되었는지는 몰라도 강을 놓고 아래위에서 이렇게 궁자가 많이 나옵니다. 그래서 옛 문헌상으로도 궁자의 의미가 무엇인지 더 알아봐야 될 것 같습니다.
듣기로는 삼한시대 때 궁궐 같은 게 있었을 거라고도 하고, 조선시대 때에 왕실의 전답이 여기 있어서 지역민들에게 임대해 주고 좋은 쌀과 채소 같은 것을 갈아서 가지고 간 일도 있다고 합니다. 어쨌든 궁에서 관리하던 뜰인 것만은 확실한 거 같아요.
주1)궁터와 궁들: 현재 나타나는 안궁리의 지명을 보면 두 가지 영역으로 대별해 볼 수 있다. 하나는 '궁터'로서 궁지(宮址)를 염두에 둬 볼 수 있다. 이것은 이 지역이 옛 삼한시대의 목지국(目支國)설이 대두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이다. 다음으로는 '궁들'이다. 이것은 궁답, 궁뜰에서 볼 수 있듯이 궁하고 관련 있는 들이다. 수년전에 조선왕조의 궁실과 안궁리 지역주민과 임대경작 계약을 한 고문서가 발견되어 이 부분이 현재로서는 설득력있게 여겨지고 있다. 의문점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으로 조사와 발굴이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옮긴이 주: 안궁리는 경기도와 충청도의 접경인 깡촌으로 파면 뭐가 나올지는 차지하고라도 땅을 엎을 일이나 있을지 모르겠다.

성월3리 p.75 - 미륵불이야기(백제성터 위례성)
[민담1/미륵불이야기]
(조사자: 다른 내용이 없으면 성산하고 미륵사 얘기 좀 알려주세요.)우리동네 뒤쪽으로는 성산1)이 있는데요. 이 산이 아주 역사적인 얘기가 많이 있어요. 산 위에 백제 대 성터2)가 있다고 하구요. 고구려 군이 내려와서 사산성3)이라고 했대요. 그 산 가기 전에 남서울대학교 뒷길로 들어가면 미륵사4) 절이 있어요. 이곳에 아주 옛날부터 효험이 있는 부처님이 계시다고 해서 먼 곳에서도 사람들이 많이 오고 있지요.작은 돌부처님인데 미륵불부처님5)이랍니다.(이하생략)
주1)성산: 성환읍 성월리와 직산읍 군서리에 걸쳐 있는 성이 있는 산으로 높이는 176m이다. 산위에 성城이 있다하여 성산城山이라 불렸다하며, 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이 있으며 '동국여지승람'기록을 보면 '土築周二千九百四十八尺 內有一井今廢"라는 기록으로 보아 토성이며 성주위가 약1키로, 높이는 2미터 규모이다. 성안에는 우물이 한곳 있다고 전하며, 일제 때 조선총독부에서 조사한 기록은 '주위팔백간'이라 하여 약1.4키로로 나타나고 있다. 1985년 충남대학교에서 일부 발굴을 하였으며 문지석門址石과 화살촉 각종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이성은 백제건국과 관계가 있는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천안군.1990.[[역사의현장]])
주2)백제 성터: 지난 1985년 충남대학교에서 성산 토성을 일부 발굴하여 중간보고서는 나왔으나 아직은 완전한 발굴과 유물에 대한 연대 발표는하지 않고 있다. 단지 이 지역이 삼국유사에서 '하남위례성'으로 비정하고 있어 이 산성도 백제 건국과 관련이 있는 성지로 추정되고 있다.(천안군.1990.[[역사의현장]])
주3)사산성: 성환,직산,입장,성거 일대는 조선시대의 직산현 지역이며, 이 지역은 삼국유사 이래 신증동국여지승람 직산현지 등에서 하남위례성으로 비정하고 있으며, 5c초 고구려의 장수왕이 남하할 때 이곳까지 내려와서 이 지역이 당시 '위례성'이었던 것을 '사산성'으로 명칭을 바꾸어 놓았다.이때부터 사산성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주4)미륵사(요약): 120년전 이창권이라는 사람이 밭갈다 미륵불 2구를 발굴하여 미륵사를 세웠다.
5)미륵불부처님(요약):120년전 발굴된 2구의 미륵불로 병에 효험이 있다 한다.
*옮긴이 주: 위 주석에서 인용한 (천안군.1990.[[역사의현장]])은 현 천안시에서 찍은 책으로 사산성을 하남위례성이라 주장하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관광수입을 의식한 듯?

우신1리 p.167 - 돌도끼
[민담2/돌도끼가 나온 유구한 역사 마을]
(조사자: 마을에서 돌도끼가 나왔다면서요? 한 번 볼 수 있겠지요?)아,예, 우선 제가 우리 마을의 역사를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요. 옛날에 여기서, 이 부근에서 철 일을 했다고 해요. 당개봉이 담금질을 한데서 왔는지도 모르고요. 종축장(국립축산연구원) 정문에서 우측지역인데 여기서 쇠를 생산했다고 하는 곳이구요. 그 이후에는 그릇을 만드는 곳이 있어서 옹기공장 동네라는 소리도 있었지요. 헌데 동네 앞 주택지역에서 돌도끼1)가 나왔어요. 지금도 목격자가 살고 계시고 그 유물을 가지고 있어요. 가루,세로,폭이 학생들 양손을 포갠 정도 크기가 되는 검정색 돌이 도끼모양을 햇는데 집터자리를 파던 곳에서 2개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주변분들 한테 알아보니까 적어도 선사시대 유물로서 아주 오래된 것이라고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아주 올 때 여기 가지고 왔습니다.(조사자: 일단은 잘 보관하시구요. 추후 박물관에서 보여주실 기회가 있을 겁니다.)
주1)돌도끼: 검정색 돌도끼 2개가 나왔으며 크기는 가로10센치,세로4센치,폭5~6센치된다. 신석기시대 유물로 보여지며 추후 감정이 필요하다.

이 민담집에는 이 외에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실려있다
성환도찰방- 조선시대 충남 지역의 모든 역과 원을 관할하는 도찰방이 있었다 한다
조선 과거길- 조선의 주요 가도로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이 이곳에 들렀다 한다
금 캐던 이야기-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채금 지역이다
청일전쟁- 성환지역은 청일전쟁의 마지막 격전지였다
정유재란- 직산과 함께 전쟁의 주요 격전지
한국전쟁- 한반도 어디에나 있는 한국전쟁 이야기
몽골- 몽골이 여기까지 와서 금을 캐가려 했다 한다
군 주둔지- 일제, 미군에 이어서 지금도 군이 주둔하고 있다

책은
http://ebook.cult21.or.kr 에서 pdf 파일로 제공(이었으나 2016.07.24 현재 해당 사이트 사라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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