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시대 위나라의 봉군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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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명: 전국시대 위나라의 봉군설치
1.전국시대 변법 개혁의 경향은 왕권강화에 의한 중앙집권화였다
그런데 위나라에서는 封君을 설치하였으니
봉군이란 공이 있는 장군대신이나 왕실일족에게 상으로 땅과 마을을 주는 것이다
그렇담 봉군 설치는 중앙집권체제 확립의 추세와 역행하는 일 아닌가?
이 의문을 푸는 것이 위 논문의 목표다2.위나라 최초의 봉군은 중산국 멸망 후 중산군의 설치였다
중산국은 위나라의 전략적 요충지였으나 조나라에 의해 위 본국과 떨어져 있는 처지였으니
고립되어 지키기 어렵고 다스리기 어려운 이 땅을 위문후는 태자인 위격을 중산군으로 삼아 간접통치를 행했던 것이다
초기의 봉군 설치는 요충지에 태자(!)를 봉군으로 둠으로서 점령지 통치를 굳건히 하고
또한 위나라 군주의 지위를 굳건히 하기위한 수단이었다

3.전국초기 위나라는 최강국의 위치에 있었으나 잇달은 패전과 왕위쟁탈전으로 국력을 소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의 설치된 봉군들은
첫째, 타국에 보낸 인질의 지위를 높이는 수단
둘째, 점령지의 수비
셋째, 군주의 근친이라는 이유였다
이들 봉군들은 주로 위국 말기에 집중되어 있는데 모두 군주의 가까운 공실 집안으로 국한되었다
또한 후대에 갈수록 봉군들이 봉지에 머무르지 않고 중앙에서 정무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4.종합하건대
위의 봉군 설치는 중앙집권 추구의 개혁 경향에 어긋나지 않았고
오히려 요충지의 수비, 공실 집안 강화를 목표로 했으며 이에따라 군주의 권력은 막강했다
특히 봉군은 공실 출신만으로 국한된다는 폐쇄적 경향은 위국이 공실을 중심으로 극히 폐쇄적 성격을 띄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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