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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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00년 일본 최고 지성이자 사상적 괴객 아라이 하쿠세키가 바라본 서양 문명, 그리고 종교적 헌신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에스파냐 선교사 조반니 사도티의 이야기다. 불과 4번의 만남이었을 뿐이지만, 아라이 하쿠세키와 조반니 사도티는 서로의 지성과 인품을 인정한다. 하지만 막부의 신하라는 아라이의 입장과 선교 중 붙잡힌 죄수라는 사도티의 입장은 서로 양립 불가능했다. 3백년이 지나 법과 제도가 바뀐 지금에 와서는 두 사람이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사람의 만남보다 더 이전인 명나라의 마테오 리치가 그랬던 것처럼 사상계에 놀라운 활기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 않았을까.

아라이 하쿠세키의 탁월함에 대해서는 이전에 ‘역사 속의 성리학’에서도 논했지만, 서양기문에서는 아라이 본인이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했는지를 알 법한 이야기가 나온다. 아라이가 사도티에게 호주 대륙의 위치를 묻자, 사도티는 갑자기 입을 다문다. 아라이가 그 이유를 묻자, 사도티는 ‘아라이 하쿠세키 당신의 총명함이라면 유럽에서라도 큰 인물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호주는 일본에서 가깝기에 당신이 호주를 차지하고자 하면 일은 어렵지 않게 이루어 질 것입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이 죽게 될 수 있으니 답할 수 없습니다’. 이에 아라이는 멋쩍어하며 대답하길, ‘법이 엄중하여 내가 군사를 일으키는 건 불가능하다’. 이 대화를 나누며 아라이는 분명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생각했으리라. 천하게 태어나 천하를 얻었으며, 내전을 종식하고 기독교 금지령과 선교사 추방령을 내린 히데요시의 시대에 아라이 하쿠세키의 운명은 이미 결정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일본에 재능과 운을 펼칠 기회가 있는 시대가 오기까지는 150년을 더 기다려야 했다.

2024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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