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가 겪은 2차대전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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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께 직접 들은 이야기다. 인상깊어 옮겨본다. 나 역시 기억이 잘 나지 않아 오류가 있을 수 있다. 할아버지께 다시 여쭤봐야지. 고로 계속 수정 예정.

2차대전이 막바지였던 초여름날이었다. 우리 집안은 넓은 평야가 펼쳐진 농촌의 면사무소(함평군 엄다면) 옆에 살고 있었는데, 그 시대엔 흔히 그랬듯 면사무소 옆에는 소학교(현 엄다초등학교)가 있었고, 운동장에는 일본군이 주둔하고 있었다. 소학교 고학년생이었던 할아버지는 수업 대신 관의 사역에 동원되어 도보 30분 거리의 옆 면(함평군 학교면)에서 일하고 있었다. 일은 제법 힘들었던 모양이다. 그러고 있는 중, 갑작스레 공습경보가 울렸다. 멀리 하늘에서 다가오는 미군 폭격기가 원흉이었다. 이미 관에서 미국 폭격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았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수도 없이 들어왔기 때문에 바로 알 수 있었다. 모두가 우왕좌왕 하는 와중에, 할아버지는 지금 당장 집으로 달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셨다. 그리 멀지 않은 거리니 얼른 뛰면 10분 거리였다. 즉시 구 1번 국도를 내닫기 시작했다. 얼마나 달렸을까, 하늘에서 천둥같은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자 할아버지는 길 옆의 논으로 몸을 날렸다. 모내기를 위해 논에 물을 받아놓고 있던 시기였던지라 엎드린 몸의 반은 물에 잠긴채였다. 그리고 하늘에서 무언가 쏟아짐과 동시에 논에 받아둔 물이 하늘로 터져나가기 시작했다. 나를 향해 기총을 쏘는건가. 폭발하는 물 속에서 잠시 황망해하던 할아버지는 곧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깨달았다. 하늘에서 탄피가 쏟아지고 있었다. 떨어지는 탄피에 물이 튀고 있었다. 그렇게 미군 폭격기는 할아버지의 머리 위를 선회하며 한참을 갈겨댔다. 기총 소리가 멈추자 할아버지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하지만 힘들게 도착한 마을에서는 개미 한마리도 찾아볼 수 없었다. 폭격기가 보이자마자 근처에 파둔 방공호에 모두 숨었던 것이다. 다행히 마을 사람들 중 사상자는 없었다.

나중에 알고보니, 미군 폭격기는 할아버지가 일하러 갔던 곳의 인근에 있던 기차역(구 학교역, 현 함평역)을 공격했었다. 공습이 있던 그 날 그 시간에 소학교 운동장에 주둔중이던 부대가 기차를 타고 이동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아마도 미군은 그 첩보를 입수했던거겠지. 라고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하지만 어쩐 일인지 군부대의 이동이 미뤄졌고, 빈 열차만 박살이 나버렸다. 일본군은 미군의 공습 정보를 미리 알아냈던걸까? 그 때 그 거대한 폭격기가 공중에서 선회하며 기총을 난사하던 광경은 멀리 다른 군에서까지 뚜렷이 보여 오랫동안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차역에 박힌 총알은 훗날 역사를 다시 짓기까지 수 십년 동안 그자리 그대로 남아 그 날을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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