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피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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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역사가들의 시대는 끝났다. 사마천은 역사에서 하늘의 도가 어디에 있는지를 물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제 과학에 천도를 묻는다. 우리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라면 경제학자가 역사학자보다 우월하다. 뿐만 아니라 정치외교학 등 수많은 학문이 역사학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일가를 이루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의 거대한 학문이 소멸해가는 시기에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 때 역사학자가 되기를 꿈꿨던 나로서는 슬픈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피엔스’는 놀랍다. 대담하게도 역사의 거대한 쟁점을 죄다 건드리고 넘어가려 한다. 농업, 국가, 과학혁명 등등… 하나같이 학계의 스탈린그라드라 할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필치는 말끝을 흐리는 법이 없이 명쾌하다. 저자는 거대한 집단적 협력과 이를 가능케했던 상상력이 지금의 인류를 만들었다고 선언한다. 물론 이 책의 주장에 대하여 세세히 따져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짜피 그런 식의 엄밀함이라면 역사학이 다른 학문을 이길 수 없다. 다소 거칠지라도 통찰력 있는 이야기. 이것이 역사학이 나아갈 수 있는 한 방법일지도 모른다.

그렇다해도 이 책은 그저 통쾌함만으로 끝나는 그런 동화같은 이야기는 아니다. 역사의 궤적은 결코 필연적이지 않았음을, 우연에 우연이 겹쳐온 것임을 누차 일깨운다.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 결코 피할 수 없는 숙명이 아니라 믿는다면, 여태껏 아무리 실패를 반복해왔다 하더라도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이 실패를 불러일으켰는지에 대한 물음, 즉 과거를 둘러싼 전투가 미래를 결정할 것이다. 나는 미래에 대한 고민이 남아있는 이상, 역사학은 계속되리라 믿는다.

Harari, Yuval N. 2011. 사피엔스. 조현욱 옮김.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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