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규 소라이의 성리학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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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오규 소라이를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음을 고백해야겠다. 나는 오랫동안 성리학을 썩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이유야 많다. 성리학에 대한 집착이 조선 망국의 원인이라는 점, 우주와 만물의 이치 따위의 현대 과학 문명의 관점에서는 터무니 없기만 한 개념 등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역시 주희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나는 주희의 사서집주로 공부했다. 그리고 주자학의 엄밀성은 내가 함부로 비판하기에는 충분히 엄밀했다. 나의 학문적 뿌리는 결국 성리학인 것이다. 그러나 비판할 능력이 없다고 하여 불만이 잠재워지지는 않는다.

아마도 내가 선진 유가와 제자백가에 집착한 이유는 이 때문일 것이다. 공자께서는 현대적인 기준에서 보아도 합리적이신 분이셨다. 그분은 논할 수 없는 것은 논하지 않으셨다. 이 점에서 성리학은 지나쳤다. 나는 만약 공자께서 만약 후대 성리학자들의 논의들을 보셨다면, 태극이니 이냐 기냐를 논하는 모습을 긍정하셨을지 의심스럽다. 굳이 성리학적 개념이 등장하지 않더라도 선진 유가의 주장은 충분히 매력적이다. 순자에 이르러 집대성된 유가는 당대의 현실에 적용하기에 충분히 현실적인 정치적 주장이다.

소라이는 이러한 나의 갈증을 일부분 해소해주었다. 그는 정치학으로서의 유학을 부활시켰다. 또한 순자가 가지고 있던 현실성과 엄격성을 갖췄다. 아마도 그가 원했던 유학의 모습은 현실 세계에서 돌아가는 정치적 방법론이었던듯 싶다. 그렇다고 해도 나는 소라이를 긍정하기만 할 수는 없다. 그는 막부 봉건제를 긍정한 나머지, 정치학으로서의 유학이 갖춰야할 필수적인 덕목을 놓쳤다. 소라이의 학문은 혁명적 성격을 결여했다. 유학의 합리성을 마지막까지 밀어붙인다면, 막부 봉건제 따위는 돌볼 여지가 없다. 이 점이 그와 그가 살던 세상의 한계가 아닌가 한다.

마루야마 마사오, 일본정치사상사연구, 1장을 읽고

2019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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