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산강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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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산강 유역의 고대고분 정밀분포조사보고서, 2011,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엄다 재동 마을의 마한 고분은 오래 전부터 나의 마음을 잡아 끌었다. 이 경치 좋은 언덕에 무덤을 쓴 사람은 누구일까? 누구였기에 2천년에 가까운 시간이 흘렀음에도 우뚝한 무덤을 남긴걸까? 그에 대한 기억은 어쩌다가 깡그리 사라진걸까? 우리는 그와 어떤 연관이 있을까? 처음으로 그 고분의 발굴 사진을 보았고, 고작 1페이지에 불과한 자료도 발견했다. 거대한 옹관 2개에 묻힌 그를 생각한다.

옹관고분사회 주거지, 2012,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2천년 전에는 영산강 유역의 좁은 땅에서조차 건축 양식의 구분이 존재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건축 양식은 차츰 하나로 통일되어 갔다. 사람 간의 교류가 잦아진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들의 교류는 역사책에 나온 대로 정복 전쟁이었을까? 어쩌면 먼 옛날 이 땅은 수많은 작은 나라들이 늘어서 있었고, 서로 적대적이거나 혹은 평화적인 관계를 맺는 그런 세상이었을까? 나는 뉴기니의 원주민들을 생각한다. 불과 몇 십년 전까지 뉴기니의 사람들은 마을 간 끝없는 투쟁 상태에 있었다. 갈리아 전쟁기를 읽으면 머리 사냥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영산강에서의 머리 사냥꾼. 상상하기 힘들지만 매혹적인 이야기다.

수달 서식지(영산강 섬진강 수계) 현장 조사 연구, 2012.12. , 국립문화재연구소

영산강에는 수달이 산다..!

영산강 유역 고대 산성, 2011, 국립나주문화재연구소

노령산맥 아래 영산강 상류에서 신안의 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산성이 있었다. 이제 와서는 언제 쌓았는지, 누가 쌓았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저 반드시 쌓아올려진 성벽의 돌 모양새에서, 그리고 한 때는 높았을 흙무더기가 그 흔적을 알릴 뿐이다. 잊혀진 성 주변에는 마찬가지로 잊혀진 고대의 무덤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역사에 기록을 전하지 못 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어떠한 이유에서 저 멀리 황해 바다의 섬 중에서, 섬 중의 높다란 봉우리에 성을 쌓았을까? 이들 사이에서, 혹은 먼 곳의 어떤 세력과의 치열한 싸움이 있지 않았을까 짐작만 할 뿐이다. 고대 산성의 훼손은 고분과 마찬가지로 심하다. 성곽 전체를 가족묘원의 울타리로 삼은 영암 성틀봉 토성의 경우는 애초에 묘원이었던 것 마냥 꼭 조화로워서 웃음이 나올 정도다. 이렇게 현대인은 2천년 전 사람들의 흔적 위에 살아간다.

202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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