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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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말하건대, 나는 이 에세이를 읽을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나는 방금 막 같은 작가가 쓴 에세이를 읽은 참이었다. 프란츠 카프카가 이룬 문학적 성취의 미묘함에 관하여 열변을 토하는 글이었는데, 솔직히 말하여 내게는 관심 밖이었다. 자연히 제 아무리 ‘이것은 물이다’의 작가라 할지라도 그의 다른 글에 심드렁 할 수 밖에 없었다. 하물며 이 글 ‘재밌다고들 하지만…’은 무려 170페이지에 달하며, 빽빽한 주석이 전체 분량의 1/5는 됨직했다. 덕분에 이 글을 읽기 전의 나의 자세는 흡사 엄숙한 지적 도전을 준비하는 모양새에 가까웠다.

하지만 잔뜩 올라가 있던 나의 가드는 글을 읽기 시작한지 몇 페이지를 넘기지 않아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호화 크루즈 여행을 체험한 후기를 담은 이 글은 대단히 솔직했다. 그의 솔직함은 스스로에게조차 엄격한 나머지 제 삼자의 시각에서 크루즈 여행을 관찰하고자 하는 자신의 시도가 불가능함을 가감없이 고백할 정도다. 그러다보니 호화 크루즈 여행이라면 응당 그러해야할 법한 향락에 대하여도 자신의 견해를 여지없이 피력한다. 이 크루즈 여행이 제공하는 게으름과 관리된 즐거움, 그리고 만족감은 마치 최면같아서, 끝내 이 모든게 환상이라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다는 것이다. 물론 환상과 최면이라 함이 단지 그가 경험한 크루즈 여행으로 끝나지는 않는다. 하나로 시작하되 만사에 이른다.

이렇게 쓰고 나니 이 긴 에세이가 차가운 냉소로 가득차 있는 것 같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쓸데없는 걱정을 하나 하자면 결코 그렇지 않다. 단 한번의 호흡도 허투루 보내지 않는 유려한 문장과 괴팍한 관찰력은 독자의 가슴을 쥐고 흔든다. 재밌다는 말이다. 문장이 이룰 수 있는 미묘함이다. 나는 늘 이런 글을 쓰고 싶었다.

David Foster Wallace. 2018. 재밌다고들 하지만 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일. 김명남 옮김. 바다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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