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론-고독, 인간의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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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소설론-고독, 인간의 운명

이건 나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다. 나는 요사이 논문 마감 기한을 맞추기 위해 몹시도 피곤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잠은 항상 미루고 미룬 끝에야 얻을 수 있는 도피처였다. 문제의 그 날은 심지어 다음 날 아침 일찍 마라톤 대회 참가가 예정되어 있었다. 헌데 알 수 없는 것은, 없는 시간을 짜내어 만든 수면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레 눈이 떠졌다는 사실이다. 잠에서 깬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주위는 조용했고, 룸메이트는 자고 있었다. 무심코 아침 운동을 시작하려던 나는 시각이 아직 오전 1시 반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결국 나는 다시 잠자리에 누웠고, 다음날 일어나보니 룸메이트는 아침 일찍부터 어디를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이어지는 일상의 하루를 보내고 나는 룸메이트에게 물었다. 아침부터 어디를 다녀 왔느냐고. 하지만 룸메이트는 이렇게 답했다. 나는 어젯밤, 들어오지 않았다고. 정체 모를 오싹함과 함께 생각해보니 그 날은 『렉싱턴의 유령』을 읽은 밤이었다. 나는 유령을 본 것일까? 아니면 모든 게 꿈 이었든가.

돌이켜보면 『렉싱턴의 유령』은 나에게 일어난 이상한 사건처럼 아리송한 이야기였다. 소설의 화자인 ‘나’는 우연한 기회로 ‘케이시’와 친해진다. 어느 날, 홀로 사는 케이시에게 대신 집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받은 ‘나’는 그의 집에 묶다가 유령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소리를 듣는다. 소리는 조용히 계속되다 사라졌다. ‘나’는 케이시에게 그 이야기를 말하지 않았다. 반년 후, 간만에 만난 케이시는 몹시 늙어 보였다.

이렇게 요약하면 이 소설은 아무 것도 아닌 듯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렉싱턴의 유령』은 무섭다. 이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공포는 그 정체를 알 수 없어 더욱 심란하다. 마치 이야기 속의 그 소리처럼. ‘나’가 본 유령은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케이시의 이야기 속에 답이 있을지 모른다. 케이시는 자신과 아버지가 겪은 불가사의한 이야기를 해준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두 부자는 마치 죽은 듯 잠이 들었다고. 그들이 그렇게 해야만 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 감당할 수 없는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까라고. 명확한 근거는 들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무엇’이 어쩌면 고독이 아닐까 싶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인간은 무엇을 마주해야 하는가. 슬픔, 분노, 절망, 그 어떤 감정도 궁극적으로는 고독과 맞닥뜨리고 만다. 그렇기에 케이시와 그의 아버지는 고독을 피하여 오로지 자기 자신만의 세계인 잠으로 도피한 게 아닐까. 그들이 짊어져야 했던 고독의 무게가 렉싱턴의 ‘유령’, 이 세상의 논리로 이해할 수 없는 존재를 만들어낸 것은 아닐까.

고독, 그것은 인간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렉싱턴의 유령』에서 드러나는 알 수 없는 오싹함의 근원은 이런 인간 본성의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는 공포를 건드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겪은 알 수 없는 일 역시 그러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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