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시아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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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전쟁, Tom Holland

 

   톰 홀랜드는 잘 팔리는 작가다. 그의 글은 재기발랄하면서도 삶에 대한 통찰을 던진다. 이러한 장점 중 그의 가장 큰 강점은 역사를 재구성하는 그의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역사를 다른 어떤 이야기보다도 거대하고 극적인 한 편의 비극이자 희극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를 간파하여 역사를 한 편의 흥미진진한 이야기로서 즐기기란 쉽지 않은 것이, 역사는 현실의 일이다 보니 세상의 그 많은 등장인물들과 그 많은 사건들을 일일이 조합하고 재구성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E. H. Carr가 말했듯이, 중요한 사건과 중요치 않은 사건을 구분하는 일이야 말로 역사 기술의 첫 걸음이다. 하지만 인물은 어찌할 텐가? 당연한 말이겠지만, 역사는 세상 모든 인간들의 이야기이며 누구 하나 역사의 주체로서 소홀히 대할 수 없다. 그들 모두가 자신의 삶의 주인은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자신이 처한 시대를 고민하고 느꼈으며 기쁘면 웃고 슬프면 울었다. 그리고 자신이 원하는 바를 행하여 살고 죽어갔다. 설사 역사가 그들을 패배자로 치부한다고 해도 이들을 놓쳐서야 어찌 재미있는 이야기가 되겠는가? 하물며 이야기란 자고로 적이 보다 강대할수록, 보다 지혜로울수록 흥미진진한 법이다. 톰 홀랜드의 미덕은 여기에 있다.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고대 그리스를 잘 알고 있다. 어릴 적, 학교에서 배운 민주주의의 발흥지로서 그러하고, 서양 문명의 기원으로서도 그러하다. 그리스 신화와 미술, 철학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페르시아는 그렇지 않다. 그들은 오로지 고대 그리스를 침략한 적이자 알렉산드로스에게 패배해 사라진 자들이다. 비록 그들이 거대한 제국을 이뤘다고 하나 이는 어디까지나 극소수의 압제자들에 의한 악의 제국일 뿐이다. 하지만 이런 선악의 이분법적 논의는 정당한가? 말할 것도 없이 그렇지 않을 것이다.

톰 홀랜드는 아테네 민주정의 성립을 이렇게 요약한다. 소수 귀족가문의 권력 쟁탈전 도중 등장한 최후의 무기. 그렇다. 아테네가 후대에 끼친 영향은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겠으나, 그 시작은 분명 그러했다. 권력 투쟁에서 패배하기 직전, 지금껏 가장 사악하고 오만했던 한 가문이 놀랄만한 제안을 들고 나왔다. 바로 권력을 대중에게 넘겨주자는 것. 당연히 이에 대한 대중의 지지는 폭발적이었고, 가장 사악했던 가문은 삽시간에 가장 위대한 가문으로 변화하여 권력을 손에 넣었다. 이는 어찌 보면 민주주의의 본질을 꿰뚫는 사건일지도 모른다. 허나 더 중요한 것은 비록 민주정의 시작은 이러했으나 이를 지킨 것은 힘없고 평범한 시민들의 열망이었다는 것이다. 자유를 원하는 그들의 바람이 살라미스의 승리를 이룩했다.

한편 페르시아는 어떤가? 놀랍게도 페르시아는 정의의 제국이다. 페르시아는 빛과 광명의 신이자 정의의 신인 아후라 마즈다의 대변자다. 그들은 정의의 이름으로 성전을 행하고 해가 뜨는 동쪽에서 해가 지는 서쪽까지 빛이 미치는 세상의 모든 곳에 정의를 구현하고자 한다. 이로서 페르시아는 문명 세계에 평화를 가져온다. 이 평화는 인류가 최초의 정착 생활을 시작한지 무려 11,500년, 메소포타미아의 땅에 수메르가 최초의 문명을 일으킨 지 어언 4,50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1만 년간의 분쟁을 잠시나마 종식시킨 그들의 정의는 물론 그들 자신이고, 악은 그들의 적이었다. 찬양해 마땅할 일이다. 하지만 인간의 일이란 것이 어찌 그렇게 단순하기만 하겠는가. 그들이 말하는 정의는 자유를 대가로 했다.

톰 홀랜드는 책의 서두에서 이렇게 말한다. 9월 11일의 사건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말이다. 여기서 그는 일견 민주주의의 위대함을 추켜세우며 급진 무슬림의 광신성을 깎아내리려는 듯 보인다. 그러나 어찌 이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그는 어쨌든 잘 팔리는 작가이고 독자가 읽고 싶어 하는 이야기가 어떤 것인지를 잘 안다. 그리고 인간의 삶은, 인간의 역사는 수없이 많은 차원의 복합적인 선율을 만들어내고 남을 정도로 복잡하다. 그는 독자가 읽고 싶은 대로 책을 읽을 수 있게 한다. 지금 세계의 패권을 쥐고있는 미국과 미국이 내세우는 가치를 찬양해 마지않는 자들은 이 책을 민주주의의 위대한 승리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패권과 그가 내세우는 정의세계의 구현에 염증이 난 이들은 자유에의 갈망이 거대 제국을 상대로 거두는 놀라운 승리로 이 책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어떤 이들은 양자의 묘한 엇갈림뿐만 아니라 자유와 정의가 묘하게 맞물려 서로를 지탱하는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셰익스피어가 말했듯, 세상은 광기어린 소용돌이니까.


아래는 덧글 백업

  • 궁상각치우 2011/06/16 17:04 # 삭제 답글

    서평중에서 논조가 전체적으로 오리엔탈리즘적 양립구도(그리스=민주주의=선 vs 페르시아=전제정치=악)로 치우친것 같다는 말이 있던데, 실제로는 어떤가요?
  • 항거 2011/06/16 18:28 # 수정 삭제

    약자는 반드시 선하며 자유는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한다는 전제를 깔고 이 책을 읽는다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
  • 강희대제 2011/06/16 21:51 # 삭제 답글

    "9월 11일의 사건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 미국의 이덕일입니까?
  • Mr 스노우 2011/06/16 22:05 # 삭제

    톰 홀랜드가 대중서 작가이기는 하지만 이덕일과 비교할 정도는 아닙니다.
  • 강희대제 2011/06/16 22:48 # 삭제

    예전부터 이름만 듣던 책이었는데.. 다행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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